"새해엔 이웃과 함께 했으면"…추위·고독 견디는 쪽방촌

거동 불편 노인 다수…혹한 속 선별진료소에 인파 몰려

"대기 중이신 분들 서로 거리를 띄어 주세요.

앞으로 한 시간 이상 기다리셔야 됩니다.

"
2020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하루 동안 586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 진료소는 서울시가 노약자 등 고위험군 대상 선제검사를 위해 운영하는 '찾아가는 이동식 선별진료소'였다.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에도 쪽방촌 주민들과 인근 노숙인들이 이른 아침부터 진료소 앞에 줄을 섰다.

고가다리 아래서 시작된 줄은 영등포역 앞까지 약 200ｍ가량 늘어섰다.

주민들은 두꺼운 옷과 귀마개, 모자 등으로 중무장한 채 지원센터에서 나눠준 핫팩을 손에 꼭 쥐고 줄을 섰다.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은 사람도 있었다.

한 주민은 "1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며 추위 속에서 발을 굴렀다.

검사를 마친 이들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센터에서 제공한 마스크 한 박스를 받아들고 돌아갔다.

영등포보현종합지원센터 박강수 팀장은 "쪽방촌엔 거동이 불편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이 많아 주민 대부분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못했다"며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줄을 길게 선 것을 보니 다들 불안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진 후 쪽방촌에는 외부인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

다행히 연탄이나 생필품 등 구호 물품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말벗'이 되어주던 봉사자들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다.

쪽방촌 주민 임모(66) 씨는 2일 "주말마다 교회나 봉사단체에서 사람들이 와서 잘 지내는지 물어보고 이런저런 얘기도 들려줬는데 코로나 이후엔 거의 안 왔다"며 "때로는 온종일 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코로나보다 이게 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웃들과의 교류도 어려워졌다.

좁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거주해 집단감염에 취약한 환경 때문에 주민들은 서로 접촉을 최소화했다.

방 안에서 대화를 나눌 때도 마스크 착용은 필수가 됐다.

쪽방촌 주민 조상국(51) 씨는 "1명이 코로나에 걸리면 전부 위험해질 수 있는 구조이고, 어르신들이 많아 더 위험하기 때문에 다들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며 "가까운 외출도 자제하고 이웃들과도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최근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백신 소식을 들으며 길었던 '코로나 암흑기'가 새해에는 끝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한 주민은 검사를 받으면서 방역 관계자에게 "백신이 나오면 우리도 맞을 수 있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씨는 "미소를 보며 나누는 대화"라고 답했다.

"마스크가 생활필수품이 되다 보니 가족과 같은 이웃들의 민얼굴을 본 지도 오래됐어요.

새해에는 마스크 없이 이웃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고 싶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