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국회의원은 법안으로 말한다. 법안에는 국회의원의 약력과 가치관, 목표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지난 30일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19~20대 국회에서 8년 연속 환경노동위원회에 몸담으며 환경 관련 법안을 지속적으로 발의해왔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21대 국회에서는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하며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에 일조했다.

화학물질 관리 강화

3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19대 국회에서 4년간 53건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20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한 법안은 141건이다. 임기가 진행 중인 21대 국회에서는 2020년 마지막 날 기준 36건의 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한 후보자가 대표발의한 법안 중 환경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법안으로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꼽힌다. 19대 국회에서 두 차례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일부개정안'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20대 국회에서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일부개정안' '화학물질관리법 일부개정안'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 여섯 차례에 걸쳐 화학물질 관리 관련 법안을 냈다.

화관법과 화평법은 가습기살균제 사건, 구미 불산 누출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다. 발생 시 인명피해 규모가 큰 화학사고 특성상 안전관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반면 중소기업 등 산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화학규제에 따른 경영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화관법 정기검사를 유예하는 등 일부 규제 합리화 조치를 시행해왔다.

화관법 입법을 주도했던 한 후보자가 환경부 장관으로 취임하면 화학규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여당 정책위원회 의장 활동 등을 통해 '정책갈등 조정자' 역할을 해온 만큼 일방적 규제강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30일 개각 관련 브리핑에서 "한 후보자는 정책에 대한 통합적 시각과 균형 잡힌 조정능력을 갖췄다"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화관법 설계자' 한정애, 화학규제 강화할까

2050 탄소중립 선언에 일조

한 후보자는 가습기살규제 피해자 지원 강화와 생활 속 미세먼지 관리 등 '민생형 환경법안'을 다수 발의했다. 19대 국회에서 발의한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 관리법 일부개정안은 실내공기질 관리 대상에 지하철, 시외버스 등 대중교통차량을 포함시키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는 정부가 대중교통차량 내 미세먼지 관리를 강화하는 데 근거가 됐다. 환경부는 내년 4월부터 전국 지하철 승강장 미세먼지 수치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공개할 계획이다.

기후위기 대응에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한 후보자는 19대 국회부터 국회기후변화포럼에 참여했고 현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올 7월에는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는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채택돼 한국이 세계 16번째로 기후위기 대응을 선언하도록 이끌었다. 결의안은 국제연합(UN)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권고에 따라 한국도 2050년을 목표로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후보자가 대표발의한 결의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탄소중립은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을 상계해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한 후보자가 국회 입성 후 처음 발의한 법안은 환경 관련 법안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근로기준법 예외를 최소화하고 15세 이상 18세 미만 근로자의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등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는 게 주요 골자다. 노동운동가 출신 한 후보자가 근로환경 개선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법안 발의 당시인 2012년에는 15세 이상 18세 미만 근로자도 주당 40시간까지 근로가 허용됐다. 이 법안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지만 6년 뒤인 2018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15세 이상 18세 미만 근로자는 주당 35시간까지만 근로 가능하다.

성 평등한 직장을 만들기 위한 법안도 지속적으로 발의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란 법률 일부개정안을 국회 입성 후 작년까지 9차례 발의했을 정도다.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구직 서류에 사진 부착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한 후보자가 장관으로 취임할 경우 환경부 내부 분위기도 성평등, 일·가정 양립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 후보자는 2018년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에 여성 고위임원이 단 한 명도 없고 여성 관리자 비율 역시 대부분 10% 미만"이라며 "유리천장 해소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었다. 인사혁신처의 2019년도 국가공무원 인사통계에 따르면 환경부 고위공무원단(2급 이상) 46명 중 여성은 10%(5명) 수준이다.

탄소중립, 脫플라스틱 등 과제 산적

신임 환경부 장관이 해결해야 할 환경분야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탄소중립 이행방안을 마련하는 만큼 환경부 수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한 후보자는 31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정부 5년차인 만큼 지금까지 추진한 여러 정책에 대해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그린뉴딜, 2050 탄소중립 관련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명확한 이행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물 관리 일원화, 탈플라스틱, 미세먼지 저감 등 굉장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며 "남은 1년 동안 실질적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인사청문회 등에서 가덕도 신공항 관련 입장은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 후보자는 작년 11월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을 신속하게 건설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 등 절차를 간소화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환경 파괴가 불가피한 가덕도 신공항의 건설을 서두르는 한 후보자는 환경부 장관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