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창출원 대출·금융상품 판매 급제동…수익성 악화 불 보듯
전자상거래·금융 알리바바그룹 '양 날개' 동시 압박…위험 예방 차원인가 마윈 입이 화 불렀나
'결제 본업' 돌아가라는 중국…마윈의 '앤트 금융제국' 무너지나
중국에서는 스마트폰에 깔린 알리바바의 전자결제 애플리케이션인 알리페이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나 쉽게 돈을 낼 수 있다.

사려는 물건이 있는데 돈이 부족하면 알리페이 안에 있는 소액 대출 서비스인 화베이(花唄)를 이용하면 즉시 신용 한도 안에서 제법 큰 돈을 대출받을 수 있다.

여윳돈이 있을 때는 굳이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금융기관에 직접 갈 필요도 없다.

알리페이 안의 투자 상품 코너에는 여러 협력 금융기관들이 '입점'해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다양한 금융투자 상품인 '이재'(리차이·理財)를 팔기 때문이다.

보험 역시 마찬가지다.

알리페이 안에서 이미 다양한 보험 상품이 판매되고 있어 소비자들이 다양한 보험사의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알리바바그룹의 핀테크 계열사인 앤트그룹은 돈에 관련된 한 중국인들의 일상을 완벽하게 장악한 상태다.

알리페이의 연간 사용자는 이미 10억명이 넘는다.

중국 최고 부호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가 지배하는 이 회사는 이미 중국에서 기존 거대 금융 기관들을 제치고 금융 제국을 세운 것이다.

◇ 중국 당국, 앤트그룹에 '5대 요구'…사업영역 제한에 초점
그런데 마윈이 구축한 거대한 금융 제국이 강제 해체 위기를 맞았다.

마윈의 도발적인 당국 비판 후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그룹을 단단히 손보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 가운데 이번에 앤트그룹의 사업 범위를 수익성이 낮은 전자결제 중심으로 제한하겠다는 새 지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28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인민은행 등 4대 금융감독 기관은 26일 앤트그룹 경영진을 '예약 면담'(웨탄·豫談) 형식으로 소환해 "법률 준수 의식이 희박하다"고 공개 질타하면서 '5대 개선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당국은 판궁성(潘功勝) 인민은행 부행장이 발표한 성명을 통해 '5대 요구' 사항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항목 하나하나가 앤트그룹의 사업을 크게 제약하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5대 요구에는 ▲ 지불 본연으로 돌아와 투명도를 높이고 불공정 경쟁을 하지 말 것 ▲ 법에 의거해 영업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개인 신용평가 업무를 수행할 것 ▲ 위법한 대출, 보험·투자상품 판매 등 금융 활동을 시정할 것 ▲ 금융 지주사를 설립하고 충분한 자본금을 유지할 것 ▲ 규정에 따라 자산 유동화 증권을 발행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결제 본업' 돌아가라는 중국…마윈의 '앤트 금융제국' 무너지나
이중 금융 당국의 태도를 집약적으로 담은 것이 '지불 본연'의 업무에 충실히 하라는 첫 번째 요구다.

한 마디로 중국 경제의 중요 인프라가 된 전자결제 업무를 제외하고 대출, 보험·금융상품 판매 등 전통적인 금융 산업의 영역을 넘보지 말라는 경고다.

중국 당국은 선제적인 금융 리스크 방지를 앤트그룹의 사업 영역을 제한할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금융 당국은 무분별한 성장이 금융 위험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 최대 핀테크 기업인 앤트그룹이 금융 서비스 산업에 끼치는 영향력을 줄이도록 지시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요구 사항은 앤트그룹이 가진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사업에 활용하는 것을 제약하는 내용이다.

앤트그룹은 알리바바그룹 차원에서 확보된 방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들의 신용을 자체적으로 평가해 소액 대출액을 결정해왔는데 이를 불법 유사 신용평가업으로 규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세 번째 요구는 첫 번째 요구와 연결되는 것인데 전자결제 외에 소액대출 등 나머지 수익 사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그 규모를 억제하라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 앤트그룹 '부채 경영' 우려하는 중국 당국
금융 지주사를 설립하라거나 자산 유동화 증권 발행을 엄격히 하라는 내용은 자기자본 규제와 관련된 내용이다.

앤트그룹은 그간 전통 은행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자기자본을 갖고 레버리지(부채) 비율을 크게 일으켜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경영 전략을 취해왔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이런 앤트그룹의 경영 방식이 나라 전체의 금융 위험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보고 자기자본 비율을 높일 것을 유도해왔는데 앤트그룹의 실질적 주인인 마윈은 이에 매우 강한 불만을 품어왔다.

마윈이 지난 10월 24일 공개 포럼에서 세계적 은행 건전성 규제 체계인 '바젤'을 '노인 클럽'이라고 비유하면서 당국에 도발적인 비판 메시지를 날린 것도 실은 점차 강화되는 당국의 자기자본 규제에 불만을 드러낸 것이었다.

자기자본 문제는 기업의 수익성과 직결된다.

자기자본을 최대한 적게 유지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마윈의 입장과 이를 위태로운 행동으로 바라보는 감독 당국의 입장이 정면으로 부딪친 셈이다.

'결제 본업' 돌아가라는 중국…마윈의 '앤트 금융제국' 무너지나
자산유동화 증권 규제 강화 문제도 바로 이 지점에서 연결이 된다.

앤트그룹은 소액 대출 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자본을 '무한 확장'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앤트그룹이 A라는 사람에게 1만 위안(약 170만원)의 소액 대출을 해줬다고 가정해보자. 앤트그룹은 1년 뒤에 상환받을 수 있는 이 채권을 담보로 90%에 해당하는 9천위안 짜리 ABS를 발행해 자금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B라는 새 고객에게 9천위안을 빌려주고, B에게 빌려준 소액 대출 채권으로 다시 8천위안 짜리 ABS를 또 찍어 확보한 돈으로 C고객에게 8천위안 어치의 대출을 해 주는 식이다.

중국 당국이 자산 유동화 증권 발행을 엄격히 하라고 요구한 것은 향후 알리바바의 ABS 발행 규모를 크게 제약하겠다는 정책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은행감독관리위원회 등 중국 금융 당국은 이미 지난달 2일 발표한 '소액 대출 회사 감독 강화에 관한 통지'에서 ABS 같은 자산 유동화 증권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 규모를 순자산의 4배 이내로 제약한다는 방침을 구체화한 바 있다.

◇ 마윈의 날 선 당국 비판 후 본격화한 '인터넷 공룡 길들이기'
최근 들어서는 중국 핵심 수뇌부까지 앤트그룹의 이런 경영 행태를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 중추 기구인 정치국은 이달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주재한 회의에서 반독점 원칙을 강조하면서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을 방지한다"는 내용을 함께 언급했는데 이는 앤트그룹의 경영 행태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제 본업' 돌아가라는 중국…마윈의 '앤트 금융제국' 무너지나
결국 이러한 당국의 요구는 앤트그룹의 수익성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본업'인 전자결제 서비스는 사용자를 끌어오는 효과가 클 뿐 수익성 자체는 높지 않다.

앤트그룹은 대신 소액 대출과 금융투자·보험 상품 판매 등을 통해 많은 이익을 냈다.

앤트그룹의 올해 상반기 매출에서 소액 대출 부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40%를 차지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당국의 강력한 앤트그룹 규제가 금융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차원의 조처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경제 매체 제일재경(第一財經)은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소액 대출 신규 규제는 단기적으로 관련 회사들의 경영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장기적으로 시스템 위험을 낮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마윈의 도발적 당국 비판 발언이 중국 당국이 알리바바그룹을 비롯한 인터넷 공룡 기업 옥죄기에 들어간 중요한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중국 정부는 금융위기 방지를 명분으로 앤트그룹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반독점을 명분으로 알리바바그룹의 핵심 사업인 전자상거래 관련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달 들어 당국에 보고하지 않고 인수합병을 해 반독점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알리바바에 벌금을 부과했고,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양자택일 강요' 문제와 관련한 별도의 반독점 조사가 시작된 사실도 공개했다.

양자택일 강요란 알리바바가 타오바오와 티몰 등 자사 플랫폼 입점한 업체들이 징둥(京東) 등 경쟁 업체에 입점하지 못하게 한 것을 말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의 알리바바그룹의 상황과 관련해 "마윈의 제국이 위기 모드에 있다"고 평가했다.

앤트그룹의 상장이 불발된 11월초 이후 알리바바 시가총액은 2천억달러(약 220조원)가량 줄어들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