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땅속에 묻히는 돈, 미래로 흐르는 돈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속담이 있다. 돈이라는 것은 말과 마찬가지로 발이 없지만, 천 리뿐만 아니라 수억만 리도 순간 이동할 수 있다. 무릇 경제정책의 본질은 돈을 우리가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게 해주는 곳으로 흐르게 하는 일이다.

서울 한강 변이나 부산 해운대 해변에 우뚝 서 있는 고가 고층 아파트를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그 웅장함은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종의 공공 자산이라고 볼 수 있는 리버뷰와 오션뷰를 일부 사람이 독점하는 듯해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욱이 지금의 속도라면 조만간 한강은 거대한 아파트 병풍 속에 갇혀 있는 슬픈 강이 될 것 같아 우울하기도 하다.

이 높은 아파트들은 우리의 돈이 강변과 해변으로 흐르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주거용 건물 투자가 많았다. 2010년 대비 2019년 투자증가율은 전체투자가 43.8%였고, 주거용 건물은 117.4%, 무형자산은 76.5%였다. 주거용 건물 투자증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가운데, 무형자산 투자증가율은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주거용 건물 투자 대비 무형자산 투자의 비율은 2012년 184.4%로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으나, 2019년에는 125.6%로 대폭 하락했다. 주거용 건물 투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각종 규제로 인해 투자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졌다고 짐작할 수 있다.

감정을 넘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일은 강변 아파트에 흘러드는 막대한 돈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방안이다. 강변에 아파트를 짓고, 강변의 고가 아파트를 사는 일은 개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른 투자에 비해 쾌적한 주거 서비스의 제공가치, 향후 위험과 기대 수익률을 모두 고려할 때 당사자로서는 최적의 투자를 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 차원에서 보면 단기적이고 제한된 인원에게 편익을 주는 부동산 투자보다 장기적이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편익을 주는 미래에 대한 투자가 더욱 중요하다.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부동산 투자보다 미래에 대한 투자가 기대수익률이 높아지도록 하는 일이다. 경제개발 시대에는 기업들의 유형자산에 대한 설비투자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핵심 동인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고,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저출산 고령화의 압력이 급증하기 시작하는 현 시점에서는 투자 중에서도 무형자산인 지식재산생산물 투자가 우리 경제성장의 핵심 동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최근 우리 경제는 민간은 차입을 통해 부동산 구입에 집중하고, 정부는 차입을 통해 복지 지출에 집중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후대에 남겨줄 건 강변 아파트와 국가부채밖에 없을까 두렵다. 미래세대에 남겨줘야 할 것은 국가부채가 아니라 국가자산이어야 한다. 국가자산 중에도 상당 기간 시효가 유지되면서 지속적으로 수익을 주는 무형자산을 남겨줘야 한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도록 하고, 그렇게 창출한 지식재산권으로 우리 후대들이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상상을 응원하는 교육 개혁, 미래를 창조하는 연구개발 투자확대,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우선시하는 노동시장 개혁 그리고 기회의 문을 여는 규제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절망의 산으로 가는 대한민국호를 다시 희망의 바다에 띄우기 위한 고민을 정리해야 할 때다. 1인당 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가 아니라, 1인당 지식자산이 가장 많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땅속에 묻히는 돈을 미래로 흐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도 미래로 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