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숨어있는 열혈 봉사자들은 말한다…
돈·시간 여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봉사를 위해 배우고 단련하는 삶…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기쁨에
퇴직 후 우울감 느낄 틈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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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의료원 호스피스병동.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머무는 이곳에는 한 달에 한 번 ‘기타 선생님’ 권종대 씨(68)의 작은음악회가 열린다. 모든 소리는 절반 크기에, 속도는 2~3배 느린 연주회다.
권씨의 다이어리에는 봉사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병동의 음악봉사 외에도 홀몸노인을 돌보는 나눔동행봉사, 시니어 멘토링 등으로 1주일을 보낸다.
권씨는 32년간 우체국 공무원으로 일했다. 고객만족상, 자랑스러운 우체국장상 등을 수차례 받을 정도로 성실했다. 그런데도 막상 퇴직이 눈앞에 다가오자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섰다고 했다. 그는 “이러다 병상에 누워 마지막을 보내면 어쩌나 겁이 났다”며 “우체국 공무원으로 일하며 몸에 밴 친절함을 이용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고, 그러다 떠오른 게 봉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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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홀몸노인 김모씨(83)를 수년째 돌보고 있다. 가족들이 떠나고 우울감으로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그에게 권씨가 손을 내밀었다. 1주일에 한 번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청소와 빨래 등을 돕는다. 권씨는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는 김씨의 말을 듣고 내 역할이 생겼음에 감사함을 느꼈다”고 했다.
권씨는 “매일 움직이고 대화하면서 몸도 건강해졌다”며 “퇴직 후 우울감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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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씨는 은행과 무역회사 등을 거쳐 1993년 배터리 제조업체인 세방전지 사장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마쳤다. 유창한 영어 실력은 무역회사 등에서 일하며 습득한 것이다. 남씨는 “사회생활을 할 때는 각박한 현실에 쫓겨 자원봉사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며 “은퇴하고 나서야 다른 사람과 사회로부터 은혜를 입은 만큼 보답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오랜 기간 그는 “남을 도우면 정신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말했다. 인생의 남은 목표를 묻자 “건강하게 봉사하며 살다가 곱게 이승을 하직하는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안동=최다은/양길성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