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경영학·사회학·역사학·경제학의 포스트코로나 융합연구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등 석학 5명 공저 '초가속' 발간
"전쟁과 팬데믹 같은 역사적 변곡점은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서서히 벌어지고 있던 트렌드를 엄청나게 가속화 시키는, 초가속(Hyper-Acceleration)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와 김동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함준호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등 5명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즈음에 시대의 흐름을 공부하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뇌과학,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 경영학 등 각자 자기 분야에서 아는 것에 대해 발제하고, 다른 분야의 시각에서 질문을 던지는 융합연구를 진행했다.
5개월에 걸친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과 토론 과정은 '초가속'이란 제목의 책으로 묶였다.
공저자들은 각각의 시각으로 코로나19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진단한 결과 코로나 사태로 나타난 변화 가운데 새로운 것은 없으며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던 모든 흐름이 초가속되고 있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사회학자인 장덕진 교수는 한국에서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네트워크를 분석하면서 사회관계망 네트워크의 허와 실을 꿰뚫는다.
장 교수는 6월 말까지 수도권의 확진자 데이터를 봇을 만들어 수집하고, 수작업으로 필터링을 거쳐 분석한 결과 코로나 감염 네트워크에서도 '멱함수(power function)'가 나타났음을 밝혀낸다.
멱함수 구조는 미국 사람들이 누구든 간에 6단계만 거치면 다 연결된다는 '케빈 베이컨 게임'이 대표적이다.
장 교수에 따르면 코로나 감염 네트워크는 상위 1%만 잘라내면 50%의 연결고리가 없어지는 구조다.
역사학자인 주경철 교수는 역사 해석의 과정에서 '감염병'이라는 요소를 추가했을 때 비로소 보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나 아스테카 문명의 몰락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시하며 역사의 방향타를 틀어온 수많은 현장 뒤에 감염병이 존재했음을 밝힌다.
주 교수는 지금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변화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 역사의 흐름에 내재한 변화이며 코로나19 역시 변화의 흐름을 폭발적으로 가속시키는 가속기이자 촉매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장 교수는 이 거대한 가속장치 앞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개별적 변화를 두고 이렇게 촌평한다.
"기업이나 학교는 화상으로 회의와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실행하지 않았을 뿐. 코로나19 덕분에 계절독감이 크게 줄었다고 하는데, 마스크 쓰고 손 씻기 잘하면 독감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실행하지 않았을 뿐. 학제 간 연구나 융합연구를 강조해온 것도 20년은 족히 넘었는데, 융합하면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실행하지 않았을 뿐. 코로나19는 우리가 오랫동안 실행하지 않았던 변화와 혁신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뇌과학자인 김대식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세계화 사회가 아니라 부족 사회로 가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탈세계화', '냉전 2.0'을 연관시킨다.
"인간에게는 세계화된 세상보다는 부족적 세상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건 30만년 됐지만, 문명은 1만년, 세계화는 채 200년이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