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아버지 "다른 사건 수사에 힘써 달라" 거듭 민원

일본에서 20년 이상 장기 미제로 남아 있던 살인사건에 대해 피해자 부모의 거듭된 청원으로 경찰이 수사를 중단했다.

피해자 측이 수사 중단을 요청한 이유는 다른 사건 수사에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1996년 4월 11일 오후 11시 30분께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역에서 몸을 부딪쳤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남성 행인과 시비를 벌이던 릿쿄(立敎)대 4학년생 고바야시 사토루(당시 21세) 씨가 얼굴을 얻어맞고 넘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고바야시 씨는 사건 발생 5일 만에 외상성 뇌출혈로 사망했고, 현장에서 달아난 건장한 체격의 20~30대 범인은 상해치사 용의자로 수배됐다.

오랫동안 범인을 잡지 못한 경찰은 상해치사죄 공소시효 만료 직전인 2003년 3월 살인사건으로 전환해 수사를 계속했다.

이후 2010년 4월 일본에서는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는 새 형사소송법이 시행됐다.

고바야시 씨를 숨지게 만든 범인을 쫓는 경찰수사가 영원히 이어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日 피해자측 요구에 장기미제 살인사건 이례적 수사 중단
경찰 수사와는 별도로 피해자 아버지인 고바야시 구니사부로(75) 씨는 목격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전단을 길거리에서 뿌리고, 누군가 범인을 봤다고 한 역에서 잠복하기도 하는 등 범인 찾기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아들 피살사건 수사가 무한정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마침내 그는 2012년 "법 개정 이전에 발생한 내 아들 사건에까지 공소시효 폐지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법 아래의 평등에 반한다"라며 수사를 중단해 달라는 요청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그 후로도 범인을 찾기 위한 경찰 수사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은 이케부쿠로 경찰서는 "다른 사건 수사에 힘써 달라"는 구니사부로 씨의 민원이 이어지자 마침내 수사를 종결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피해자 측 민원에 따라 사실상 수사를 끝내지만 범인 관련 정보가 들어온다면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의 수사 종결로 8일 승차권, 취업 관련 안내서 등 아들 유품을 넘겨받은 구니사부로 씨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보고 싶다"면서 범인이 잡히지 않아 분하지만 자기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경찰이 다른 사건 수사에 힘써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일본 언론 매체들은 공소시효가 폐지된 살인사건 수사가 피해자 측 요구로 중단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구니사부로 씨 사연을 일제히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