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 돌아온 대응 사격 군인 "또 도발하면 北 지도 바뀔 것"
저지선 구축해 마을 지킨 소방관…포격 참상 국내외에 알린 공무원
[연평도 포격 10년] 빗발친 포탄 속으로 달려간 영웅들
10년 전 빗발치는 포탄 속으로 달려가 침착하게 대응 사격을 한 해병대원들.
포격으로 화마에 휩싸인 섬에서 물을 날라서 불을 껐던 소방관, 생생한 사진으로 그날의 참상을 알린 공무원.
북한의 무자비한 포격 도발 속에도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 했던 '영웅'들이 있었다.

이들의 사명감이 지금도 연평도를 지키고 있다.

◇ 화염 속 대응 사격한 해병…연평도로 돌아왔다

김정수(40) 소령과 정경식(48) 준위는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각각 연평도 주둔 해병대(연평부대) 포7중대 중대장과 행정관이었다.

포7중대는 K-9 자주포 4문으로 북한군의 기습 도발에 맞섰다.

북한군의 포격 당시 부대는 전술훈련 평가를 받던 중이었다.

갑자기 '쾅'하는 폭발음이 들리더니 '쿵, 쿵'하는 파열음이 울렸다.

지하상황실에서 훈련을 지휘하던 김 소령은 즉각 연병장으로 뛰쳐나갔다.

K-9 자주포 중 2문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연평도 포격 10년] 빗발친 포탄 속으로 달려간 영웅들
북한군이 쏜 포탄은 김 소령의 머리 위로 날아가고 주변에 떨어지기도 했다.

교통호 등에 쌓아 놓은 폐타이어에 불이 붙어 검은 연기가 솟구쳤고, 매캐한 냄새로 호흡이 곤란한 상황이었다.

소화전을 끌어왔으나 포격의 영향 탓에 부대가 정전돼 물이 안 나왔다.

유선 케이블도 끊어져 통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 당시 훈련으로 사격 포반의 적재 포탄도 비어 있던 상태였다.

김 소령은 16일 "화재 진압, 통신 복구, 탄약 운반, 대응 사격 등을 동시에 해야 했다"며 "포탄이 떨어지고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13분 만에 대응 사격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수많은 교육훈련이 모여서 자기 임무 하나만큼은 해낸다는 철저한 대비 태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당시 화재 진압에는 쓰레기통과 세숫대야 등 각종 부대 물품이 동원됐다.

화염이 탄약고 등으로 옮겨붙어 2차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원들은 수백 차례 물을 날라서 불을 껐다.

단 한 명도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지 않았다.

방탄모에 불이 붙은 것도 잊은 채 대응 사격에 몰두하는 투혼을 보여준 해병대원도 포7중대원이었다.

현재 김 소령은 합동군사대학교 해군대학에서 교관으로 임무를 하고 있다.

교육생들에게 그날의 교훈을 들려주며 철저한 준비 태세를 강조한다.

정 준위는 해병 1사단 포병여단 등에서 복무했다가 올해 7월 연평도로 돌아와 연평부대 포9대대 관측중대 소대장을 맡고 있다.

정 준위는 "또다시 적이 도발한다면 연평도에서 보이는 북한의 섬은 아예 지도에서 사라져 한반도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 마을 지킨 소방관·참상 알린 공무원
[연평도 포격 10년] 빗발친 포탄 속으로 달려간 영웅들
10년 전 북한군의 포격 도발로 화재가 발생하자 저지선을 구축하고 추가 피해를 막았던 소방관은 지금도 연평도를 지키고 있다.

인천 중부소방서 연평119지역대 소속 신효근(49) 소방장은 북한군의 1차 포격 당시 혼자 소방 펌프 차량을 끌고 나가서 옛 해경특공대(현 해경파출소) 건물과 인근 주택에 붙은 불을 껐다.

2차 포격 뒤에는 의용소방대원들과 함께 펌프차에 물을 넣고 포격으로 발생한 화재 현장을 50여 차례 오갔다.

포격으로 전기 공급이 끊어지자 자가발전기를 가동해 지하 관정에서 받은 물을 받아다가 펌프 차량에 넣어서 뿌렸다.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2학년, 유치원에 각각 재학 중이던 아이들을 섬 밖으로 보내고 그는 포격 현장 속으로 달려갔다.

진압 도중 전주가 쓰러지면서 고압선에서 스파크가 튀는 등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불길 확산을 막기 위해 발전소 근처에 구축한 저지선을 끝까지 지켰다.

신씨는 "그때는 오로지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여건이 허락한다면 고향인 연평도에서 계속 소방관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 10년] 빗발친 포탄 속으로 달려간 영웅들
10년 전 포격 직후 연평도에 들어가 그날의 참상을 사진으로 기록해 알린 공무원도 있었다.

인천 옹진군청 공업 6급 공무원인 원지영(48) 주무관은 10년 전 포격 당일 오후 9시께 병원선을 타고 인천시장, 옹진군수 등과 함께 연평도로 갔다.

그리고 24일 오전 2시부터 오후 2시까지 12시간 동안 숨 돌릴 틈도 없이 연평도를 샅샅이 돌며 사진 600여장을 찍었다.

그의 사진은 국내외 매체에 전달돼 북한의 도발로 인한 참상을 생생하게 전했다.

당시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태어난 6개월 쌍둥이가 있었으나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원 주무관은 "겨울이라 추운 날씨였으나 나중에 보니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며 "내가 찍지 않으면 참상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다는 생각에 '하나만 더'하는 생각으로 찍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 10년] 빗발친 포탄 속으로 달려간 영웅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