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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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참여정부 때인 2004년 추진했던 노동전문법원 신설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개혁 차원에서 추진했다가 노사정 간의 이견으로 논의가 중단됐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친화적인 대법원이 구성되면서 논의가 재점화한 것이다. 하지만 노동법원 신설 필요성에 대한 노사정 간의 이견이 여전한데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노동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본격적인 추진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노동법원부터 신설"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 8차회의 안건으로 '전문법원 추가 설치 여부 및 우선순위'를 올려 노동법원과 해사법원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 내 사법정책분과위는 "필요한 전문성의 정도, 별도 법원 설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선적으로 노동법원, 해사법원의 추가 설치를 추진함이 상당하고, 향후 추진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법원행정처에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2004년 대법원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 추진했던 노동법원 신설 재추진을 공언한 것이다.

노동법원은 말 그대로 노동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원이다. 일반 민·형사사건과 달리 노동사건이 갖는 특수성을 감안해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이 있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논의의 발단이 됐다. 2003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주도로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2004년 사개추위에서 논의가 구체화됐다. 하지만 노동계를 제외한 경영계는 물론 정부에서조차 기존 노동위원회가 있는 상황에서 불요불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사실상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후 18~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이렇다할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동법원 이슈는 정권 교체 주기에 맞춰 간헐적으로 제기됐던 사안으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렇다보니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과 논리에 비해 구체적인 도입 방안이나 도입 후 문제점에 대한 검토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동계 "노동사건 심판, 신속성·전문성 높여야"

대법원이 다시 노동법원 설치를 추진하고 나선 데에는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을 지냈고, '노동법원 설계자'로 알려진 김선수 대법관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참여정부 당시 노동법원을 추진하다가 논의가 중단된 이후 이어진 보수정권 하에서는 대법원이 노동계의 노동법원 신설 주장에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았으나 친노동 성향의 대법원이 들어서면서 다시 추진에 나섰다는 평가다. 참여정부 당시 노동법원 설치 요구는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등 노동관련 구제 절차가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5심제 구조여서 소송이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직으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구제절차라는 인식이 출발점이었다. 여기에 노동법이 근로자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취지인데 순환보직 시스템 하의 재판부의 노동법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더해졌다.

대법원이 노동법원 설치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재추진하기로 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간의 산발적인 논의를 종합해보면 직업법관을 주심으로 노사 양 측의 참심관을 두는 참심제가 유력하게 검토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형사재판에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한 형태다. 다만 참심제를 하더라도 노사 참심관의 의견이 반드시 판결에 반영되는 완전참심제로 할 것인지, 직업법관이 노사 참심관의 의견을 참고만 하는 준참심제로 갈 것인지도 논의가 본격화하면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법원 신설 논의가 시작된 지 20년이 가깝지만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해외 운영 사례에 관한 정보도 많지 않다. 사개추위 논의 당시 노사정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참심제 형태의 노동법원을 운영하는 나라는 독일, 프랑스 등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노동법원을 1심, 2심, 3심으로 나누고 모두 일반법원과 분리 운영한다. 프랑스는 노동법원이 민사1심법원 역할을 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2003년 노사분쟁이 급증함에 따라 2년여 간의 논의 끝에 노동심판제를 도입해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역할을 합쳐놓았으나, 사실상 우리나라의 노동위원회와 유사한 형태라는 평가다.

○경영계·정부 "취지는 공감하지만…"

노동계의 주장과 달리 경영계와 정부에서는 노동법원 신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행 노동위원회 체제를 흔드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1953년 노동위원회가 생긴 이래 60년 넘게 역할과 기능이 확대돼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새로운 제도 도입보다는 기존 시스템을 보완해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경총 관계자는 "특허법원, 가정법원처럼 특정 사안에 대해 판결 전문성을 높이자는 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전문성 제고 방안이 굳이 노동법원이라는 특수법원 신설 밖에 없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아직 대법원으로부터 노동법원 신설 논의에 참여하라는 통보를 전달받지 않았지만 노동위원회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노사 분쟁 발생 시 법원에 가기 전 상당수가 조정을 통해 갈등을 마무리짓는 상황에서 굳이 모든 사건을 법정에서 다툴 필요가 있냐는 취지다. 중앙노동위원회 관계자는 "노동법원 설치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신속성을 말하지만 법원은 신속성 면에서 노동위원회를 따라오기 어렵다"며 "노사갈등 대부분 사건이 노사 양쪽 모두 별도의 소송비용 없이 노동위원회 차원에서 종결되는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노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노동위원회를 통한 사건 종결률은 95.4%에 달한다.

노동계의 요구로 촉발된 이슈이지만 실제 노동법원이 신설되면 노사 어느 쪽에 유리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행 노동위원회 제도 하에서는 노사 갈등이 발생하면 조사관이 직접 조사를 하는 등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지만, 법정으로 직행할 경우 직접 입증책임을 져야해 변호사 선임 등 비용과 시간에 있어서 근로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단시간내 분쟁이 종결되면 노동위원회부터 대법원에 이르는 장기간 소송에 따른 기업 이미지 훼손 등 손실을 줄일 수도 있겠지만 조정으로 끝날 사건이 모두 법정으로 가게 되면 노사 간 소송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가정법원, 특허법원에 이어 노동법원, 해사법원 등 각종 특수법원 설립 추진은 급증하는 변호사로 경쟁이 치열해진 법조시장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