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처방 병원 발길 끊겨
유료백신 동나고 무료만 남아
시민 "정부는 책임 없나" 비판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이 컸다. 독감 감염에 취약한 나이인 만큼 백신 접종을 무작정 피할 수는 없어서다. 4세 아이를 둔 홍모씨(36)는 “돌 지나기 전에 아이가 독감에 걸렸는데, 그때 엄청 위험했다”며 “사망 사고가 들리면서 백신을 맞는 게 꺼림칙하지만 백신을 맞지 않았다가 아이가 독감에 걸릴까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회원 수 7만 명인 청주의 한 맘카페에는 이날 “아이가 조금 있으면 6개월이라 독감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데 맞아도 걱정, 안 맞아도 걱정이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뿐 아니라 고령자의 걱정도 컸다. 독감 백신을 맞고 숨진 9명 중 7명이 60대 이상인 고령자여서다. 경기 안양에 사는 이모씨(62)는 “무료 독감 백신을 맞으라는 안내문자를 받고 22일로 예약했는데 20일 사망 소식을 듣고 바로 취소했다”며 “독감 백신을 맞은 10대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는데, 우리 같은 고령자는 걱정이 더 크다”고 했다.
33만 명이 활동하는 맘카페 맘이베베의 한 회원은 “아이도 아이인데, 부모님이 19일 백신을 맞았는데 고령 사망자가 많아서 엄청 찝찝하다”고 적었다. 이 카페에는 ‘어떤 독감 백신 상품이 그나마 안전한지’ 묻는 글도 연이어 올라왔다.
독감 백신을 처방하는 병원도 혼란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21일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이 둘러본 소아과·이비인후과 열 곳에서는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이날 오후 4시께 서울 강남구의 한 이비인후과에는 비염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한 명만 앉아 있었다. 강남구의 다른 이비인후과 관계자는 “사고가 있어서 그런지 무료 접종자가 거의 없어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무료 백신만 남아 있고 유료 백신은 똑 떨어진 상태”라고 했다. 서초구에 있는 K청소년과의원 직원은 “백신이 소량 들어와 백신 접종을 예약한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렸는데, 두세 명 정도가 예약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정부 대처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회원 수 20만 명인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맘카페 회원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자는 아무도 없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썼다.
양길성/김남영/최다은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