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이하 녹지병원)의 개원을 둘러싼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와 허가권자인 제주도 간의 법정 다툼에 대한 1차 결론이 20일 나온다.
영리법인이란 자본을 투자받아 의료사업을 영위하고,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다시 배분하는 형태의 병원을 말한다.
제주지법 행정1부(김현룡 수석부장판사)는 중국 녹지그룹 산하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과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을 이날 선고한다.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은 말 그대로 제주도가 제시한 병원 개설 허가조건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이다.
제주도는 2018년 12월 5일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 진료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건을 달아 녹지병원 개설 허가를 내줬다.
공공의료체계 붕괴 가능성을 염려하는 영리병원에 대한 국내 정서를 고려한 조치다.
제주도는 이와 관련 녹지병원 개설 허가는 일반적인 국내 의료기관 허가와는 달리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에 따른 특허적 성격의 재량행위라고 주장한다.
특히 제주도는 제주특별법과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에 도지사가 의료기관 개설에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제시하며 내국인 진료 불가를 조건으로 한 병원 개설 허가 조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녹지제주는 반면 진료 대상에 내국인을 제외한 허가 조건이 의료법을 어겨 위법하다고 반발하며 2019년 2월 14일 제주도의 개설 허가조건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의료법 15조에 국내 모든 의료기관은 어떤 환자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해외 의료 관광객을 주 대상으로 하는 영리병원도 이 법에 따르면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제주도는 또 2019년 4월 17일 녹지병원이 의료법이 정한 개원 시한(90일) 내에 문을 열지 않자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제주는 같은 해 5월 20일 제주도의 조건부 개설허가 취소처분에 반발, 허가 취소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인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을 연이어 제기했다.
지난 공판 과정에서 양측은 제주도의 의료기관 개설 조건부 허가의 적법성을 놓고 치열하게 법리를 다퉜다.
녹지제주 측 변호사는 "제주특별법에 의해 의료법 상 의료기관 개설 허가 권한이 제주도지사에게 위임됐으나, 내국인 진료를 제한할 수 있는 재량이 부여되지 않았다"며 "병원 개원이 지연된 정당한 사유가 있고 허가 취소 대신 업무정지 15일 등 다른 제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며 허가 취소와 관련해서도 도지사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녹지제주가 의료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제한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으나 제주도는 제주특별법에 따라 조건부 허가를 낸 만큼 정당하다"며 "녹지제주가 병원을 우선 개설하고 차후에 허가조건에 대한 하자를 다툴 수 있음에도 개설을 늦춘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맞섰다.
1심 판결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와 상관없이 그 후폭풍은 커질 전망이다.
재판부가 녹지제주 측의 손을 들어줄 경우 국내 의료산업 전반에 큰 폭풍이 휘몰아칠 가능성이 생긴다.
우선 외국인이 투자하는 영리병원이 우후죽순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이와 함께 공공의료 약화에 대한 보건의료·시민사회단체의 우려도 증폭돼 큰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부가 제주도의 입장에 정당성을 부여할 경우에도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법적 분쟁이 투자자-국가 소송(ISD)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녹지제주는 녹지병원 사업을 위해 지금까지 8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녹지제주가 녹지병원 사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될 경우 제주도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함께 우리 정부에 투자손실 책임을 묻는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
녹지제주가 재판 과정에서 "제주도의 허가 취소는 한·중 FTA의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FET)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ISD를 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