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탈원전 운명, 감사원에 달렸다
여권·탈원전 단체 등 조직적 반발
감사결과 한치 왜곡없이 공개해야
정종태 편집국 부국장
국가채무도 그렇지만 탈원전도 결국 ‘속도의 문제’다. 재정 과속처럼 탈원전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 문제 핵심이다.
급격한 탈원전 정책에 변화를 줄 몇 번의 계기가 있긴 했다. 그때마다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 건 작년 1월 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간담회에 기업인들을 초청했다. 경제 어려움을 듣자는 취지였다. 탈원전으로 직격탄을 맞은 창원지역을 대표해 창원상공회의소 회장도 참석했다. 창원은 원전으로 먹고사는 협력업체 수백 곳이 밀집한 지역인데, 탈원전으로 일감이 끊기면서 지역경제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일각에선 이런 관측이 흘러나왔다. 고통받는 지역 중소기업인의 요청을 받고 정부로선 마지못한 척하고 (최저임금에서 그랬던 것처럼) 탈원전도 속도 조절을 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였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멈춰선 신한울 3·4호기라도 짓게 해달라는 중기인의 절절한 호소에도 대통령은 꿈쩍하지 않았다. 탈원전 정책의 재검토는 없을 것이라고 아예 못 박았다. 그때부터 정말 궁금해졌다. 이 정부가 탈원전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까닭이 도대체 뭘까.
항간에선 반원전 영화에 감동한 문 대통령이 탈원전 강경주의자가 됐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실은 정권 핵심부에 ‘원전 마피아’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자리잡고 있는 게 컸다. 이유가 뭐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원전산업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망가뜨려도 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탈원전 과속으로 인해 연관 산업이 입은 천문학적 피해, 수많은 일자리의 공중분해, 원전 해외사업 차질 등 부작용을 일일이 언급하려면 한 페이지로도 부족하다.
감사원의 월성 원전 감사 결과 발표가 이틀 앞(8일)으로 다가왔다.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2년 전 조기폐쇄 결론을 내린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논란이 이어지자 국회에서 감사원 감사를 요구했던 사안이다. 감사 결과는 탈원전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릴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조기폐쇄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졸속 탈원전 정책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뿐 아니라, 백지화된 신한울 3·4호기까지 불똥이 튈 것이 뻔하다. 그만큼 핵폭탄급 위력을 갖고 있다.
발표를 앞두고 탈원전단체가 최재형 감사원장을 감사하라며 공격하고,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피감자들이 뒤늦게 “감사원의 강압조사에 따른 것”이라며 진술을 번복하는 등 조직적인 반발이 있는 것을 보면 뭔가 수상쩍은 게 분명하다. 백운규가 누군가. 특허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던 실용 공과대 교수가 탈원전 공약 입안에 참여한 공로로 일약 산업부 장관에 발탁되자마자 산업부 에너지 라인을 대거 숙청하고, 탈원전 정책을 맨 앞에서 밀어붙인 장본인 아닌가. 산업부 공무원들은 이때를 부처 역사상 가장 절망적인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명색이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뭐가 무섭다고 강압에 못 이겨 진술을 했다는 건가.
조직적 반발에 감사 결과 발표가 불투명하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결과는 한 치의 왜곡도 없이 공개돼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깨끗이 매듭짓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언젠가는 탈원전 정책 관련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최 감사원장의 결기를 믿는다.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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