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응원문화 흡수…시간·경제 여유 갖춰 행동력 커
음반 수십장 사고 차트 '총공'까지…아이돌 뺨치는 트로트 팬덤
"하루 24시간 숨스밍(숨 쉴 때마다 스트리밍)은 기본이죠."
부산에 사는 주부 한모(52) 씨는 4개 음원 사이트에서 가수 김호중의 노래가 제대로 재생되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했다.

한 씨는 멜론·지니뮤직·벅스·소리바다 등에서 정기 이용권을 구매해 PC에서 김호중 노래를 '무한 재생' 한다.

그의 노래를 차트 상위권에 올리기 위해 이른바 '총공'을 하는 것이다.

◇ "내 가수 순위 높이자"…아이돌 전유물 '총공', 트로트 팬덤도 흡수
총공이란 '총공격'의 줄임말로,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 노래를 차트 상위권에 올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음원을 조직적으로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차트 순위에 민감하고 팬 수가 많은 아이돌 팬덤이 적극적으로 한다.

그러나 최근 트로트 열풍으로 일부 가수가 강력한 팬덤을 갖추게 되면서 어느새 트로트 팬 사이에서도 총공 문화가 자리 잡았다.

임영웅, 김호중, 송가인, 영탁, 이찬원 등의 공식 팬카페에서는 총공 방법과 재생해야 하는 곡 목록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공지하고, 회원들에게 동참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팬들은 노래를 재생하고 있는 장면을 캡처해 올리는 이른바 '총공 인증'을 하기도 한다.

실제 차트에서도 효과가 나타난다.

지난 10일 지니뮤직 일간 차트 '톱 100'에 오른 트로트 가수 노래는 총 7곡이다.

김호중이 발매한 팬송 '살았소'는 최상위권인 9위에 안착했다.

특히 심야 시간대 실시간 차트는 트로트 팬덤의 전쟁터다.

보통 이 시간에는 일반 사용자들이 노래를 듣지 않기 때문에 팬덤 '화력'이 센 만큼 순위가 오른다.

11일 0시 기준 지니뮤직 실시간 '톱 50'에선 김호중과 임영웅의 노래가 각각 11곡씩 올라 차트를 양분했다.

스탠딩에그 '오래된 노래'는 최근 임영웅이 방송에서 불러 화제가 된 후 차트 역주행을 하며 최상위권에 자리했다.

임영웅이 부른 버전이 차트 상위권에 올라 주목도를 높였고, 그 결과 8년 전 나온 원곡까지 관심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임영웅의 팬덤 파급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음반 수십장 사고 차트 '총공'까지…아이돌 뺨치는 트로트 팬덤
◇ 음반 여러 장 구매…"생일 축하해" "응원해" 실시간 검색어 올리기도
오는 22일 피지컬 앨범으로 출시되는 김호중의 정규 1집 '우리가(家)'는 지난 7일 기준 선주문 수량 40만장을 돌파했다.

아이돌 음악이 주를 이루는 앨범 시장에서 이례적인 기록이다.

팬 카페 '아리아스' 회원이 약 8만3천명인 점을 고려하면 한명당 여러 장의 앨범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카페에는 앨범 수십장을 구매한 뒤 이를 사진으로 찍어 인증한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을 통해 톱스타 반열에 오른 임영웅은 출연 이후 정규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

대신 유튜브에서 강세를 띤다.

2천700만뷰를 돌파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무대 영상을 비롯해 조회수 500만건을 넘은 무대 영상만 총 15편을 보유했다.

팬카페는 '유튜브 집중곡' 바로가기 링크를 게재해 임영웅의 대표 무대 영상을 바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 놨다.

회원들은 음원 총공 인증을 하듯이 유튜브 재생을 인증하거나 댓글을 남기고 있다.

"영탁 생일 축하해", "임영웅 사랑해", "김호중 응원해" 등을 포털 사이트에 집단으로 검색하면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노출하기도 한다.

음반 수십장 사고 차트 '총공'까지…아이돌 뺨치는 트로트 팬덤
◇ 구매력·시간 갖춘 중장년층, 트로트계 '큰손' 됐다
이러한 음반 대량 구매, 유튜브 반복 재생, 실시간 검색어 노출 등도 아이돌 팬덤이 주로 하는 응원 방식이었다.

트로트 팬덤이 아이돌 팬 문화를 흡수하게 된 데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돌 팬덤의 응원 방식을 온라인을 통해 쉽게 배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다른 팬덤이 어떻게 스트리밍을 돌리는지 등이 다 나와 있다.

처음엔 잘 몰랐던 기성세대도 '팬심' 만큼은 똑같기 때문에, 그런 매뉴얼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트로트 팬덤은 비교적 구매력을 갖춘 중장년층으로 이뤄져 있어 차트 총공이나 음반 대량 구매 등을 여유롭게 할 수 있다.

정 평론가는 "트로트 팬 대부분이 어린 세대보다 경제력과 시간이 있는 기성세대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서포트하는 규모 자체가 달라진다"고 짚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중장년층 사이의 '유대감'을 트로트 팬덤화 현상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중장년 팬들은 유달리 다른 팬들과 마치 가족처럼 지내고, 해당 가수 역시 자식이나 동생처럼 여기며 응원하고 연대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팬카페에서 소통하고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행동력이 배가된다"며 "일종의 작전 회의를 하면서 특정한 방향으로 집단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