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법 시행 3년째…안착은 '아직'
"업체들 공식 절차보다 이면 합의…법규 보완해야"
"결함차 교환·환불 어려워" 한숨 쉬는 소비자들
인천시 미추홀구에 사는 A씨는 2015년 5월 인천 한 공식 대리점에서 제타 2.0 TDI 차량을 샀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차량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계기판에 계속 경고등이 뜨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상하게 여긴 A씨는 서비스센터에 차량을 맡겼지만, 타이어 공기압, 배터리, 엔진오일 등을 모두 점검한 결과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계기판 내역을 삭제하는 조치만 해 줬다.

이후에도 적색 신호에서 정차 후 다시 출발할 때 시동이 한참 동안 걸리지 않거나 얕은 언덕길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는데도 차량이 뒤로 밀리는 이상 현상이 빚어졌다.

1년여 뒤인 2016년 6월 중순 A씨 가족이 강원도 한 국도에서 차량을 몰고 가던 중 빠르게 달리던 차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멈춰 서 자칫 2차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사고 이후 A씨는 인천 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서비스센터에 차량을 입고하고, 원인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센터 측은 대략 한 달 뒤 '자동차 미션의 자체 결함으로 판단된다'며 보증 기간이니 차량을 무상 수리해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A씨는 크고 작은 고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수리를 받아도 안심할 수 없다며 차량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법적으로 교환·환불 조건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양측 갈등은 이후 4년째 해결되지 않은 채 지지부진한 상태다.

A씨는 "운전 중 이상 현상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수리만 잘해서 타면 된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가족이 다 같이 타는 차여서 안전에 대한 불안이 너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우디폭스바겐 코리아 관계자는 "법적으로 수리를 진행한 뒤에 또 같은 문제가 발생해야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한 상황이고 고객이 수리를 거부하면 멋대로 할 수도 없다"며 "고객에게 렌터카도 오랜 기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새로 산 자동차가 계속 고장 나면 제조사가 교환이나 환불을 해 주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일명 '레몬법')이 2018년 12월 시행됐지만, 법이 현실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법 47조는 구매 후 1년을 넘지 않은 신차에서 중대한 하자 2회나 일반 하자 3회가 발생해 수리한 후 또다시 하자가 발생했거나, 누적 수리 기간이 30일을 초과했을 경우 차량 교환·환불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자동차 안전 기준에 맞지 않는 구조나 장치의 하자로 인해 안전이 우려되거나 경제적 가치가 현저하게 훼손되거나 사용이 어려운 차도 마찬가지다.

이때 교환·환불 요구 기한은 소유자가 차량을 인도받은 날로부터 2년 이내다.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한 사항이 포함된 서면 계약에 따라 판매된 자동차만 가능하다.

그러나 구매 후 1년이 넘은 차에서 하자가 발생하거나, 수리를 받아도 같은 하자가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법규가 느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2014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5년간 국토교통부 자동차리콜센터 신고를 분석한 결과 수입산 승용차의 결함 신고 건수는 2천891건이었다.

엔진 결함이 768건(26.56%)으로 가장 많았고 자동변속기 483건, 조향 핸들 및 칼럼 272건, 운전장치·장비 228건 순이었다.

같은 단체가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수입산 승용차의 리콜 실태에서도 2016년 7월∼2019년 6월 1년간 18개 사의 159만8천183대가 리콜 신고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에어백 결함이 49만1천866대(36.5%)로 가장 많았고 화재 발생 45만1천998대(19.4%), 생산 공정상 문제 18만9천149대(14%), 안전 기준 위반 11만2천26대(6.3%)로 집계됐다.

이 같은 결함이나 리콜 신고 건수에 비해 차량 하자가 실제 교환이나 환불로 이어진 사례는 없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간 차량 교환·환불 신청 81건 가운데 실제 교환이나 환불을 받은 사례는 전무했다.

최종 판정까지 간 사례 6건 가운데 '각하' 판정이 4건, '화해' 판정이 2건이었고 심의 도중 교환·환불 신청을 취하한 사례도 19건이었다.

신청을 취하하면서 실제로는 차량 교환·환불을 받은 사례도 5건 있었다.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7일 "법 규정 자체가 강하냐 느슨하냐를 따지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규정 자체보다 사측이 결함 은폐를 위해 레몬법에 따라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뒤에서 소비자와 이면의 합의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행위는 레몬법이 제대로 현실에 안착하는 것을 방해하고 제도 자체를 무력화한다"며 "공식적인 절차를 따를 수 있도록 법규를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