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사실이 일부 허위여도 진실이라고 믿었다면 위법하지 않아"
대법 "공익목적 판결문 공개는 명예훼손 아냐"
누군가의 범행 전력이 담긴 판결문을 다수에게 공개했다고 해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명예훼손·상해·모욕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 "금융자문과 이사장이 회삿돈 다 해먹었다"…명예훼손일까
택시협동조합 조합원인 A씨는 2017년 9월 조합원들이 모인 곳에서 "조합의 금융자문 B씨와 조합 이사장 C씨가 회삿돈을 다 해 먹었다"라고 말해 B씨와 C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A씨는 당시 B씨가 조합자금 11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판결문 사본을 조합원 60여명에게 배포했다.

A씨는 비슷한 시기 조합원들 앞에서 C씨에게 욕을 하고 C씨와 몸싸움을 하며 28일간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힌 혐의도 받는다.

B씨 측은 A씨의 행동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피해액이 모두 회복됐다는 점에서 "다 해 먹었다"는 표현은 실제와 다르다고도 했다.

C씨 측은 B씨의 판결문에 C씨의 가담 여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B씨와 C씨가 함께 범행했다'는 취지의 A씨 발언은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B와 C씨 측의 주장을 모두 인정해 A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A씨 측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 "공익목적 판결문 공개는 명예훼손 아냐"
◇ 일부 사실 잘못돼도 실제 그렇게 믿었다면 명예훼손죄 안돼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의 모욕·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지만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C씨에 대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A씨가 그 사실이 허위라고 인식해야 하는데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A씨가 실제 'B씨의 횡령 범행에 C씨도 가담했다'고 믿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C씨가 수사기관에서 "B씨가 조합 설립에 도움을 줘서 조합자금을 사용하도록 허락했다"고 진술한 적이 있고 이런 정황을 근거로 A씨가 C씨에게 횡령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B씨에 대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 해 먹었다"는 표현 역시 'B씨가 피해액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은 아니라며 B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적시된 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진실한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