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경 서울대 교수 한국연구재단 보고서 통해 지적
"재난·촛불집회 경험과 저임금 공공의료인력·주부 등 헌신도 한몫"
"K방역이 민주적 모델? 인권침해 요소 없는지 살펴봐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모범적 대응으로 주목받는 'K방역'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혜경 서울대 미학과 교수는 20일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코로나19 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보고서에서 "한국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방식이 중국식 전체주의와는 다른 민주적인 모델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인권 침해 요소는 없는지, 사회적 합의는 충분히 이뤄진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의 감염자 동선 정보는 도처에 존재하는 폐쇄회로(CC)TV, 스마트폰 GPS 정보, 신용카드 거래내용을 샅샅이 추적함으로써 만들어지고 그 같은 정보는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널리 보급된 국내 스마트폰을 통해 방방곡곡으로 전달된다"고 운을 뗐다.

"K방역이 민주적 모델? 인권침해 요소 없는지 살펴봐야"
이어 "그 같은 공선 추적과 정보 공개가 감염자의 프라이버시를 충분히 존중한 것인지, 훔쳐보기와 호기심으로 인해 사생활이 가십성으로 소비될 우려는 없는지 조심스럽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 각국이 접촉 금지와 같은 '부권적 명령'을 발동했다면, 한국에서는 미시적 통제와 모성적 돌봄을 바탕으로 한 '모성적 통치성'으로 바뀐 것뿐이라는 학자의 지적도 있다"며 "한국의 방역 모델이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한국이 코로나19에 모범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세월호 사건과 같은 재난 경험에서 비롯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한국식 참여 민주주의 경험 등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국내 방역에는 저임금 공공의료 노동자들과 하급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점도 언급돼야 한다"며 "한국의 방역 성공은 유교적 전통이나 디지털 빅 브러더 때문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고용된 이들 노동력에 대한 원시적 착취 덕분이라는 관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아가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더 많은 육아와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대부분이 여성인) 주부 등 우리 사회에서 필수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과로와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에는 신 교수를 비롯해 역사학자 장문석 교수, 서양 고전학자 안재원 교수, 어문학자 김월회 교수, 영문학자 이동신 교수 등이 참여해 역사적 시각에서 본 전염병, 코로나19 관련 '인포데믹'(악성 소문이나 왜곡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현상)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