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日 지식·자본·기술 활용해 韓 부가가치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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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 앞선 일본과 소득격차 좁혀졌다고
'참고할 여지 없는 나라'로 치부해선 안돼
국중호 < 日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
'참고할 여지 없는 나라'로 치부해선 안돼
국중호 < 日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
이달 15일은 한국으로서는 일제 식민지 해방 75주년 광복절이지만, 일본으로 보면 2차 세계대전에 무조건 항복해 패배한 지 75년이 되는 날이다. 해방 이후 역사 전개를 더듬어 보면 6·25전쟁이 일본과 한국에 주는 희비(喜悲) 교차 및 역사 관점 차이를 둘러싼 적잖은 갈등이 등장한다. 현 한·일 갈등의 원인으로 2018년 11월부터 불거진 징용공 배상 문제를 들곤 있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의 소득 수준이 일본에 버금갈 정도로 늘어났다고 하는 위상 변화가 자리한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한국으로서 더욱 능숙한 대일 전략이 요구되는 국면이다.
일본은 1952년 연합국(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나 폐허 상태였다. 6·25전쟁(1950~1953년)이 한반도로선 비극이었지만 일본에는 폐허의 잿더미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이루는 계기로 작용했다. 막대한 인명 피해, 국토 피폐, 남북한 분단의 상처를 가져온 6·25전쟁이 일본 사회를 ‘잘살아보자’는 쪽으로 뭉치게 한 모양새다. 그 후 일본은 경쟁과 협조를 내건 ‘협조적 자본주의’ 체제를 취하면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의 기술 축적으로 제조업에서 강점을 발휘해왔다.
일본에서는 패전 후유증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의 “더 이상 전후(戰後)가 아니다”라는 말이 1950년대 중반 회자됐고,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한 1973년까지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고도경제성장기(1956~1973년) 일본의 실질 성장률은 9.1%에 이르고 있다(일본 내각부 자료). 1973년 당시 한·일 소득수준(1인당 GDP)을 비교하면 한국이 407달러, 일본이 3999달러로 일본이 한국보다 9.8배 높은 수준이었다(세계은행 데이터). 그러던 것이 2019년 일본이 4만247달러, 한국은 3만1762달러로 1.3배 수준으로 소득 격차가 좁혀졌다(구매력 평가로 보면 양국 모두 4만3000달러 정도로 비슷한 수준).
2000년대 이후는 정보통신기술(ICT) 및 인공지능(AI)산업이 커지면서 일본 소부장산업의 상대적 가치는 축소됐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저항하는 민주 의식이 자리잡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극작가 고우카미 쇼우지는 “일본형(型) 조직이나 사회는 옛날이나 지금도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이나 사는 보람, 행복을 소비해 존속한다’고 하는 흉포한 면이 있다”고 잘라 말한다(아사히신문 8월 10일자). 일본에서는 국가나 조직을 위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따를 수밖에 없는 ‘동조압력’의 공기(空氣)가 지배하고 거기에 거슬리면 비난의 표적이 되거나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일본의 경기침체나 폐쇄성을 목격하며 한국 여론이 ‘일본은 더 이상 참고할 여지가 없는 나라’로 치부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일본은 세계 제일의 대외자산 보유국이며, 지역의 다양성도 풍부하고, 제조업 기술 축적이 한국에 앞서 있다. 한국이 소부장산업의 국산화를 이뤄간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축적 기술을 이용하는 전략 모색이 필요하다.
일본의 우익성향 정치 행태나 식민지배 역사를 떠올리면 감정이 앞서지만, 감정적인 대일 전략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성숙한 대처로 경제 활성화를 이뤄가는 유력한 방법의 하나는 대일 파이프 구축을 통해 일본의 축적(지식·자본·기술)을 활용해 한국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 구사다. 사냥을 잘하는 매는 발톱을 숨긴다.
일본은 1952년 연합국(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나 폐허 상태였다. 6·25전쟁(1950~1953년)이 한반도로선 비극이었지만 일본에는 폐허의 잿더미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이루는 계기로 작용했다. 막대한 인명 피해, 국토 피폐, 남북한 분단의 상처를 가져온 6·25전쟁이 일본 사회를 ‘잘살아보자’는 쪽으로 뭉치게 한 모양새다. 그 후 일본은 경쟁과 협조를 내건 ‘협조적 자본주의’ 체제를 취하면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의 기술 축적으로 제조업에서 강점을 발휘해왔다.
일본에서는 패전 후유증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의 “더 이상 전후(戰後)가 아니다”라는 말이 1950년대 중반 회자됐고,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한 1973년까지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고도경제성장기(1956~1973년) 일본의 실질 성장률은 9.1%에 이르고 있다(일본 내각부 자료). 1973년 당시 한·일 소득수준(1인당 GDP)을 비교하면 한국이 407달러, 일본이 3999달러로 일본이 한국보다 9.8배 높은 수준이었다(세계은행 데이터). 그러던 것이 2019년 일본이 4만247달러, 한국은 3만1762달러로 1.3배 수준으로 소득 격차가 좁혀졌다(구매력 평가로 보면 양국 모두 4만3000달러 정도로 비슷한 수준).
2000년대 이후는 정보통신기술(ICT) 및 인공지능(AI)산업이 커지면서 일본 소부장산업의 상대적 가치는 축소됐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저항하는 민주 의식이 자리잡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극작가 고우카미 쇼우지는 “일본형(型) 조직이나 사회는 옛날이나 지금도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이나 사는 보람, 행복을 소비해 존속한다’고 하는 흉포한 면이 있다”고 잘라 말한다(아사히신문 8월 10일자). 일본에서는 국가나 조직을 위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따를 수밖에 없는 ‘동조압력’의 공기(空氣)가 지배하고 거기에 거슬리면 비난의 표적이 되거나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일본의 경기침체나 폐쇄성을 목격하며 한국 여론이 ‘일본은 더 이상 참고할 여지가 없는 나라’로 치부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일본은 세계 제일의 대외자산 보유국이며, 지역의 다양성도 풍부하고, 제조업 기술 축적이 한국에 앞서 있다. 한국이 소부장산업의 국산화를 이뤄간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축적 기술을 이용하는 전략 모색이 필요하다.
일본의 우익성향 정치 행태나 식민지배 역사를 떠올리면 감정이 앞서지만, 감정적인 대일 전략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성숙한 대처로 경제 활성화를 이뤄가는 유력한 방법의 하나는 대일 파이프 구축을 통해 일본의 축적(지식·자본·기술)을 활용해 한국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 구사다. 사냥을 잘하는 매는 발톱을 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