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가 뿌린 사랑, 드디어 꽃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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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태석 신부 발자취 담은 영화 '부활' 구수환 감독
"30년 넘게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PD로 일하면서 사회 부조리를 파헤쳤지만 어느 순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절감했어요.
그런데 10년 전 '울지마, 톤즈'와 이번에 '부활'을 제작하면서 깨달았어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분노가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을요.
"
최근 개봉한 '부활'은 누군가의 희생이 희망으로 싹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영화다.
전작인 '울지마 톤즈'가 남수단의 톤즈에서 10년 가까이 의료 봉사 활동을 펼치다 2010년 암투병 중 숨진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그렸다면, 후속편인 부활은 그가 뿌린 결실을 확인한다.
두편의 영화를 연출한 구수환(62) 감독은 1994년부터 KBS에서 PD로 일하면서 추적 60분과 일요스페셜 등 100여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구 감독은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7년 처음 톤즈를 찾았을 때 60명이 정원인 교실에서 180명이 모여 공부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들에게 물었죠. 꿈이 뭐냐고. 90%가 의사가 되겠다고 했어요.
왜? 한목소리로 '이태석 신부처럼 살고 싶어서'라고 답하더라고요.
"
2001년부터 의료 봉사를 목적으로 남수단에 온 이 신부는 배움터를 잃은 학생을 위해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공부도 가르쳤다.
이 신부는 한센병이 창궐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남수단을 사실상 처음 찾은 의사였다
구 감독은 "한 사람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진리를 체득한 순간"이라며 "수십 년째 이어진 남수단의 내전이 잠시 멈췄던 유일한 순간이 올해 초인데, 바로 이 신부의 선종 10주기였다"고 말했다.
영화 '부활'을 기획한 계기도 이 신부가 퍼뜨린 선행이 어떻게 뿌리내렸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그와 함께 지낸 톤즈의 아이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10대였던 아이들은 성년이 됐고, 45명은 남수단에서 의과대학을 다니거나 의사 가운을 입었다.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간 학생의 소식도 들렸다.
인제대 의과대학에 다니던 존 마옌 루벤 씨는 최근 '제84회 의사국가시험' 합격증을 받았다.
의사가 된 제자 중 일부는 남수단의 한센병 환자가 모여 사는 마을로 의료 봉사를 떠났다.
이 신부가 떠난 뒤 끊겼던 의료진의 발걸음이 다시 이어진 것이다.
"한센인을 만나면 '어디가 아프냐'고 확인하기 전에 먼저 손을 꼭 잡고 쓰다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이 신부가 이렇게 했다'고 답하더라고요.
"
그는 "전쟁터를 다니며 아동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언론인으로 성장한 제자도 있었다"며 "그 역시 이 신부의 영향으로 이 길을 선택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영화 제목을 '부활'로 정한 사연도 여기에 있다.
처음 구상했던 제목은 '위 아 닥터 이태석'(우리는 이태석)이었지만 고심 끝에 변경했다.
그는 "이 신부가 남긴 사랑과 희생 정신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그게 바로 부활이 아닐까 싶었다"며 "'울지마 톤즈'는 슬픔의 눈물이지만, '부활'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영화는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여전히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 가야 하는 사명을 간직한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행복했던 이유도 그 사명을 지켜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돕겠다는 각오로 PD 일을 시작했던 그 순간의 각오를 되새김질하게 됐죠."
4∼5년 뒤에 의대를 졸업하는 이 신부의 제자들이 얼마나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갔을지 확인하는 차기작을 구상 중이라고 밝힌 그는 "1만명의 관객 중 이 신부의 뜻을 따라 기부나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며 "선한 영향력이 더 크게 퍼져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30년 넘게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PD로 일하면서 사회 부조리를 파헤쳤지만 어느 순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절감했어요.
그런데 10년 전 '울지마, 톤즈'와 이번에 '부활'을 제작하면서 깨달았어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분노가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을요.
"
최근 개봉한 '부활'은 누군가의 희생이 희망으로 싹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영화다.
전작인 '울지마 톤즈'가 남수단의 톤즈에서 10년 가까이 의료 봉사 활동을 펼치다 2010년 암투병 중 숨진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그렸다면, 후속편인 부활은 그가 뿌린 결실을 확인한다.
두편의 영화를 연출한 구수환(62) 감독은 1994년부터 KBS에서 PD로 일하면서 추적 60분과 일요스페셜 등 100여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구 감독은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7년 처음 톤즈를 찾았을 때 60명이 정원인 교실에서 180명이 모여 공부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들에게 물었죠. 꿈이 뭐냐고. 90%가 의사가 되겠다고 했어요.
왜? 한목소리로 '이태석 신부처럼 살고 싶어서'라고 답하더라고요.
"
2001년부터 의료 봉사를 목적으로 남수단에 온 이 신부는 배움터를 잃은 학생을 위해 학교와 기숙사를 짓고 공부도 가르쳤다.
이 신부는 한센병이 창궐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남수단을 사실상 처음 찾은 의사였다
구 감독은 "한 사람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진리를 체득한 순간"이라며 "수십 년째 이어진 남수단의 내전이 잠시 멈췄던 유일한 순간이 올해 초인데, 바로 이 신부의 선종 10주기였다"고 말했다.
영화 '부활'을 기획한 계기도 이 신부가 퍼뜨린 선행이 어떻게 뿌리내렸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그와 함께 지낸 톤즈의 아이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10대였던 아이들은 성년이 됐고, 45명은 남수단에서 의과대학을 다니거나 의사 가운을 입었다.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간 학생의 소식도 들렸다.
인제대 의과대학에 다니던 존 마옌 루벤 씨는 최근 '제84회 의사국가시험' 합격증을 받았다.
의사가 된 제자 중 일부는 남수단의 한센병 환자가 모여 사는 마을로 의료 봉사를 떠났다.
이 신부가 떠난 뒤 끊겼던 의료진의 발걸음이 다시 이어진 것이다.
"한센인을 만나면 '어디가 아프냐'고 확인하기 전에 먼저 손을 꼭 잡고 쓰다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이 신부가 이렇게 했다'고 답하더라고요.
"
그는 "전쟁터를 다니며 아동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언론인으로 성장한 제자도 있었다"며 "그 역시 이 신부의 영향으로 이 길을 선택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영화 제목을 '부활'로 정한 사연도 여기에 있다.
처음 구상했던 제목은 '위 아 닥터 이태석'(우리는 이태석)이었지만 고심 끝에 변경했다.
그는 "이 신부가 남긴 사랑과 희생 정신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그게 바로 부활이 아닐까 싶었다"며 "'울지마 톤즈'는 슬픔의 눈물이지만, '부활'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영화는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여전히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 가야 하는 사명을 간직한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행복했던 이유도 그 사명을 지켜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돕겠다는 각오로 PD 일을 시작했던 그 순간의 각오를 되새김질하게 됐죠."
4∼5년 뒤에 의대를 졸업하는 이 신부의 제자들이 얼마나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갔을지 확인하는 차기작을 구상 중이라고 밝힌 그는 "1만명의 관객 중 이 신부의 뜻을 따라 기부나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며 "선한 영향력이 더 크게 퍼져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