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은행들이 홍콩 국가보안법과 이에 대응한 미국의 제재 사이에서 ‘정치적 축구공’ 신세가 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지난 1일 발효된 홍콩보안법은 기업들에 광범위한 부담을 주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조항으로는 29조가 꼽힌다. 보안법 29조는 중국이나 홍콩의 기밀 또는 안보에 관련된 정보를 해외에 제공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중국이나 홍콩에 대한 제재·봉쇄 등 적대적 행위를 해도 처벌된다. 기업 역시 법 적용 대상이다. 이에 맞서 미국 의회는 지난 2일 홍콩보안법에 관여한 중국·홍콩 관료들과 거래하는 은행에 벌금을 물리거나 사업 허가를 제한하는 ‘홍콩자치법’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 거치면 시행된다.

글로벌 은행들은 양국 규제가 충돌하는 부분에서 고민하고 있다. 미국이 홍콩자치법을 시행하면 홍콩 내 은행은 미 국무부가 추려낸 제재 대상 관료들의 정보를 미 정부에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정보 제공은 홍콩보안법 29조의 ‘국가 안보에 관련된 정보를 외국에 제공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은행들은 제재에 포함될 수 있는 고객을 추려내기 시작했으며, 거래 관계를 해지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은행들은 임시방편으로 홍콩 외 지점에서 금융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홍콩보안법 38조에 외국인이 홍콩 밖에서 저지른 보안법 위반 행위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실효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 워싱턴DC 로펌인 매이어브라운의 테이머 솔리먼 변호사는 “은행들이 미·중 갈등 상황에서 정치적 축구공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다른 서방 국가들도 홍콩보안법 관련 대응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호주는 9일 홍콩 주민의 호주 체류 기간을 연장하고,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 협정을 중단하기로 했다. 뉴질랜드 역시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협정 중단, 전략물자 수출규제, 여행경보 등을 포함한 대책을 내놨다.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시위 진압 장비의 수출 제한, 홍콩을 떠난 정치 활동가의 망명권 보장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