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 오찬’에 참석한 박지원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경DB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 오찬’에 참석한 박지원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경DB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여권 내 대북 전문가 그룹을 외교안보라인 전면에 배치하는 인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서훈 국가안보실장, 임종석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모두 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남북관계에 깊숙이 관여했던 핵심 인사들이다. 일각에선 ‘햇볕정책’ 전문가들의 전면 배치를 두고 외교안보 정책의 중심을 북한에 두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권 내 북한전문가 그룹 전면 배치

문 대통령은 청와대의 서훈 안보실장과 임종석 외교안보보좌관, 박지원 국정원장, 내각의 이인영 통일부 장관 구도를 통해 교착상황에 봉착한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장관 후보자는 전국대학생협의회 1기 의장 출신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발탁해 국회에 진입한 4선 의원이다. 고(故) 김근태계의 대표 주자다. 2017년부터 매년 8월 비무장지대 걷기운동을 개최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천착해왔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사퇴한 후 통일부의 역할 강화와 대북 현안을 파악하고 있는 정치인 출신 장관 후보자군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검토돼 왔다. 이 의원은 장관 지명 직후 “다시 평화로 가는 오작교를 다 만들 수는 없어도 노둣돌 하나는 착실히 놓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정원장에서 청와대 안보책임자로 자리를 옮긴 서훈 내정자는 일찌감치 안보실장 후보로 거론돼왔다. 정의용 전 안보실장과 투톱으로 남북관계를 풀어온 경험과 국정원을 지난 3년간 안정적으로 관리해온 점 등이 두루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우리 정부가 서 내정자를 대북특사로 파견하려 했다는 내용을 공개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문 대통령의 여전한 신뢰가 방증됐다. 서 내정자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 신중하게 대응하되, 때로는 담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전문성과 조직 장악력 갖춘 박지원

박 전 의원의 국정원장 발탁은 이날 안보라인 인사에서 가장 파격으로 꼽힌다. 청와대는 그동안 국정원장 자리를 두고 서훈 전 원장을 이을 만한 후보자 물색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도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고심한 자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정보력과 상황판단이 탁월해 여의도에서 정치9단으로 불렸던 박 전 의원의 국정원장 기용은 남북관계 전문성과 조직 장악력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박 의원은 이날 후보자 지명 직후 “앞으로 정치의 ‘정’자도 입에 올리지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면서 SNS 활동과 전화소통 중단을 선언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맡아 외교안보라인 수장들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당초 국정원장, 안보실장 후보로도 거론됐으나 외곽과 물밑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게 임 전 실장 본인과 문 대통령에게 모두 나은 방향이라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관계 소홀 우려도

다만 일각에선 이번 인사가 지나치게 대북 관계 개선에 방점을 두고 있어 미국 등 동맹국과의 안보관계가 다소 소홀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국정원장에 노련미를 갖춘 박지원, 통일부 장관에 돌파력 있는 이인영 기용은 대북 라인에 화력을 총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이번 인사 자체가 북한에 대한 메시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청와대 안보실장까지 북한에 초점을 맞춘 인사라는 점에서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미·중 갈등이 북한문제 못지않은 중요한 현안인데 북한 전문가로만 채워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호/강영연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