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공증 관행 바로잡으려던 지침 무효 판결 "공증인법상 근거없어"
법원 "'쌍방 대리인' 공증 금지한 법무부 사무지침은 위법"
대부업체 직원이나 관계자가 채무자를 대리해 공증증서를 작성하는 이른바 '쌍방 대리인'을 금지한 법무부의 사무지침은 위법해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0부(이원형 한소영 성언주 부장판사)는 A법무법인과 소속 변호사들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과태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법무법인은 2017년 10월 법무부의 '집행증서 작성 사무지침'(이하 사무지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법인에 300만원, 대표와 소속 변호사들에게 각각 200만∼300만원씩 과태료가 부과되자 행정소송을 냈다.

공증은 당사자 사이에 어떤 사실이나 계약 등 법률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공적으로 명확히 증명해주는 제도로, 법률상 분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대부업체들이 강제집행을 위한 공증을 받는 과정에서 대부업체 직원이나 브로커가 채무자를 대리해 한 명의 공증인에게 많게는 수백 건의 집행증서 작성을 신청하고, 채무자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부실 공증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법무부는 2013년 10월 사무지침을 도입했다.

사무지침 4조는 대부계약에 따른 집행증서를 작성할 때 대부업체 직원이 또는 대출 브로커가 채무자를 대리하거나 채무자 대리인 선임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법무부는 사무지침 도입 당시 "대부업체 직원이나 대출 브로커 1명이 많게는 수백 건의 집행증서를 동시에 신청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막고, 채무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A법무법인이 과태료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사무지침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사무지침 4조와 같은 내용을 법무부 장관이 직무상 명령으로 발령하려면 법령에 뚜렷한 위임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공증인법에는 관련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공증인법은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공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촉탁을 거절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법무부 사무지침은 공증인법상 근거 없이 촉탁을 금지해 위법이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또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법률의 명시적인 위임 없이 감독기관이 행정규칙이나 직무상 명령으로 공증인법 규정과 배치되는 내용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위법하므로 허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