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제1회 신라면배 바둑대회에 출전한 바둑전설 한국 조훈현9단(오른쪽)과 일본 요다노리모토9단   농심 제공
1999년 제1회 신라면배 바둑대회에 출전한 바둑전설 한국 조훈현9단(오른쪽)과 일본 요다노리모토9단 농심 제공
식품기업 농심(회장 신춘호)이 ‘50세 이상’ 프로 기사만 참가하는 한·중·일 바둑리그를 연다. 세계 무대를 주름잡았던 3개국 바둑 기사들이 대거 참가해 자웅을 겨룰 전망이다.

농심은 제22회 신라면배 바둑대회가 열리는 오는 10월 12일 ‘백산수배 시니어 세계바둑최강전’을 동시에 개최한다고 26일 발표했다. 연승전으로 열리는 신라면배 대회와 형식이 같지만 출전 선수 연령대가 높다는 점이 다르다.

대회 이름을 백산수배로 지은 것은 주요 참가국인 중국과 연관이 있다. 백산수은 백두산을 취수원으로 사용한다. 농심 관계자는 “농심이 신라면으로 면의 역사를 썼다면, 앞으로 백산수를 통해 물의 신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 바둑에서 신화를 창조한 전설들의 명승부를 통해 백산수를 전 세계에 알리고 알리고, 백산수를 세계적인 명품 생수로 만들자”고 말했다.

백산수배 바둑대회는 한국, 중국, 일본의 만 50세 이상 시니어 기사가 4명씩 팀을 이뤄 연승전으로 승부를 가리는 단체전이다. 각국 선발과정을 거친 한국·중국·일본 시니어 국가대표 프로기사들은 베이징에서 개막전을 가진 후 부산에서 2차전(결승)을 통해 우승을 다툰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연승전을 벌이는 기존 신라면배 바둑대회와 동일한 방식이다.

우승상금은 총 1억8000만원. 3연승을 하면 500만원을 받고 이 후 1승을 추가할 때마다 500만원을 더 받는다. 전승인 8연승을 기록하면 5000만원의 연승 상금을 받는다. 바둑계는 중국과 한국이 강세지만 시니어 기사로 제한하면 일본도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국 최고수 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한국기원에서 세계 챔피언 경력이 있는 시니어 기사는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9단 등이 있다. 일본 기원에선 오타케 히데오·다케미야 마사키·고바야시 고이치·린하이펑·조치훈·왕리청·요다 노리모토 9단 등 7명이 세계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중국 기원에서는 마샤오춘·위빈 9단이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 경력을 지니고 있다.

농심이 바둑대회에 공을 들이는 것은 중국 시장과의 각별한 관계 때문이다. 1996년 상하이에 라면공장을 지으며 중국에 처음 진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신라면과 너구리 등을 그대로 시장에 선보였다.

농심은 중국인들의 바둑 사랑이 유별나다는 점에 주목해 1999년 7월 한국기원과 함께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시작했다. 첫 대회는 한국의 조훈현과 이창호, 중국의 마샤오춘과 칭하오,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등 세계 정상급 기사들이 참가해 화제를 모았다.

신라면배가 ‘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불리면서 중국인들이 매년 대국장과 TV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중국이 처음으로 우승한 제9회 대회 결과는 현지 700여 개 언론사가 보도했다. 신라면배의 흥행은 농심의 초창기 중국사업에 돌파구가 됐다. 신라면은 2018년 중국 인민일보 인민망이 발표한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농심은 지난 2015년 17회 대회부터 우승상금을 국내·외 최고 수준인 5억원으로 인상하며 대회 위상을 높였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신라면배는 세계기전 가운데 유일하게 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대항전"이라며 "선발 기사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