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중퇴생의 한탄 "학생을 위한 기관 맞나…더 일찍 자퇴 안한 것 후회"

탐사보도팀 = 학부모와 학생의 폭언, 학교장의 갑질로 고통받는 교사들의 반대편엔 학교가 제대로 품지 못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공부와 교우 관계라는 성장기의 만만찮은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선행학습을 전제로 한 학교 수업에 소외감을 느끼고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청소년들 말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 발로 교문을 박차고 나가 '홀로서기'를 택한다.

박소영(20·가명) 씨도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고등학교 2학년 말인 지난 2017년 12월 스스로 학교에서 뛰쳐나왔다.

자퇴란 학생 자신의 결정이지만 박 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퇴를 강요당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만한 사연을 풀어 놓았다.

[혼돈의 학교]③ "학교폭력 무조건 참으라는 학교 답 없더라"
결정적인 자퇴 계기는 고교 입학 후 처음 사귄 친구의 돌발 행동이었다.

박씨는 2학년 때 반이 나뉘게 됐는데 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찾아와 다짜고짜 책상을 치면서 죽여버리겠다며 거친 욕설을 쏟아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씨는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주저앉았다.

친구들이 부축해 보건실에 갔지만 보건 선생님은 나를 상담실로 보냈고, 상담실에서는 상태가 이 정도면 보건실에 가라고 떠넘기는 듯했다"고 말했다.

친구의 위협은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그런데 학교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무조건적인 양보를 강요했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그는 "상담 선생님은 '그 아이가 힘드니 네가 이해를 해야 한다'면서 화해를 종용하고 억지로 손잡고 포옹하는 자리도 만들었다.

가해자의 사정을 딱히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자리가)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그때 학교에 정이 떨어졌다.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담임 선생님도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서 "가해 학생도 힘드니 무조건 참으라"고 했고, 그런 선생님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만 했다고 한다.

[혼돈의 학교]③ "학교폭력 무조건 참으라는 학교 답 없더라"
결국 그는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채 한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았고 결국 자퇴했다.

박씨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데는 초등학교 시절 경험도 한몫했다.

반장이었던 그는 담임선생님의 지시로 수업 시간에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었는데, 앙심을 품은 한 친구가 그를 마구 때렸다는 것이다.

박씨는 그때도 학교가 폭력의 피해자인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학업에 대한 고민은 이런 박씨의 자퇴 결정에 지렛대가 됐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학원을 안 다녔는데 선생님은 선행학습을 전제로 '이거 학원에서 다 배웠지? 그냥 넘어간다'고 하기도 했고, 시험문제도 (학원) 문제집 같은 것에서 내곤 하니까 따라가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고교 입학 초기엔 학력고사에서 2등급 정도 나왔다.

초반에는 진도를 빨리 나가도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점점 그런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2학년 때 성적은 6등급까지도 내려갔다.

공부는 오히려 그때 제일 열심히 했는데도…"
[혼돈의 학교]③ "학교폭력 무조건 참으라는 학교 답 없더라"
박씨는 자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더 일찍 자퇴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억지로 버티고 그 시간을 허비했나 싶다.

자퇴 시기가 늦춰지면서 검정고시와 수능 시험이 늦어진 것도 안타깝다"라고도 했다.

학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박씨는 "학교가 본연의 기능 중 5% 정도밖에 못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좋은 선생님들이 본인의 역할을 99% 하려고 해도 학교 시스템상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학교는 사회화 기관이라고 하는데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나를 억눌러야 하는 분위기가 너무 강했다.

정말 학생을 위한 기관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