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부산지법 판사 "판결 때마다 '공동체의 善' 고민하죠"
“평화로울 땐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존중해야 마땅합니다.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서죠.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국가적 위기 때는 공동체의 선(善)을 우선해야 합니다.”

‘호통 판사’ ‘소년범들의 대부’로 불리는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판사(사진)는 지난 22일 부산지법 집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의 네 번째 책 《선, 정의, 법》(두란노)을 출간한 직후다. 지난 1년 동안 신문 등에 투고한 글에 그동안 고민했던 주제에 대한 글을 덧붙여 엮은 칼럼집으로, 23년 판사직 경험이 담겨 있다. “가정을 비롯한 공동체의 해체가 심각한 시대에 코로나19 사태가 덮친 우리 공동체를 위한 정의와 법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작업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천 판사는 서울 이태원 클럽발(發)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를 예로 들며 “요즘 같은 때에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클럽에서 즐기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사회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필요하다”며 “개인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자제와 양보를 통해 안전을 지키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의에 대한 목소리는 커졌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선의 미덕은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이 정의·법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약자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사회, 공동선을 회복하는 사회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천 판사는 재판하고 최종 판결을 내리는 데 ‘공동체가 지향하는 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폭행당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과 한 학생이 친구를 폭행한 개별 사건을 두고 어떤 기준으로 양형할지 늘 고민”이라면서도 “공동체가 지향하는 선이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판사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조건으로 사랑과 양보를 꼽았다. 그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쳐놓은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기꺼이 사랑의 책무를 짊어져야 한다”며 “비상시국엔 공동체주의도, 자유주의도 양보와 절충을 통해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천 판사는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7년 부산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부산고법, 창원지법, 부산가정법원 등을 거쳐 현재 부산지법 부장판사로 있다. 8년간 소년재판을 맡으며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을 법정에서 엄하게 꾸짖거나 비행청소년을 따뜻한 마음으로 끌어안아 ‘호통판사’로 잘 알려져 있다.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등의 책을 펴내며 소년범에 대한 인식 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2014년 환경재단의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로 선정됐고, 5일 제98회 어린이날에 법정 안팎에서 소년범에 대한 인식 전환에 헌신한 공적이 인정돼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부산=김태현 기자 0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