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상흔 수십년 지나도 여전…"아직도 도망가는 꿈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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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학연구소, 간접 조작·반독재 시국 사건 고문 피해자 73명 설문조사
응답자 45% PTSD '심각'…23%는 자살시도 경험도 "올해 제가 81세예요.
고문의 기억이 세월이 가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더 살아나는 것 같아요.
아무리 무죄를 받았다고 해도 딱지가 붙어 다니는 것 같고, 아직도 도망가는 꿈을 꿉니다.
" (고문 피해자 A씨)
"고춧가루를 개어서 콧속에 집어넣고 물 붓고, 그게 끝나면 전기 고문하고 그랬죠. '네 가족은 어떻게 할 거야? 자식들 어떻게 할 거야?' 그건 못 견디겠더라고요.
" (고문 피해자 B씨)
간첩 조작사건, 반독재 시국사건 등을 이유로 고문 등 국가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수십 년째 신체·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거나 국가배상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다시 경험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8일 인권의학연구소가 최근 공개한 '고문 피해자 인권상황 후속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간첩 조작사건,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으로 국가폭력을 당한 피해자와 가족 응답자 가운데 45.6%가 심각한 수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는 형사 재심소송이나 민사배상소송으로 배·보상을 받았거나 소송을 진행 중인 국가폭력 피해자 73명(당사자 68명, 가족 5명)을 설문 조사하고, 22명을 심층 인터뷰해 분석한 결과가 담겼다.
설문 응답자들은 출소 이후 고문 후유증 외에도 이혼·이사·친척과 거리감 등 가족관계 변화(58.6%), 보안 관찰(75%), 취업제한(74.7%) 등으로 사회적 낙인과 고립,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20.6%는 알코올중독 증상이 있고, 23.2%는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는 "고문 피해가 일어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정신적 후유증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며 "심층 인터뷰한 피해자의 경우 거의 모두가 불면증, 알코올 의존, 대인 기피, 정서 불안, 집중력 장애 등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재심과 손해배상 소송은 피해자들이 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 역시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응답자 가운데 64명이 고문 피해와 관련한 형사 재심소송을 제기해 63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86.9%는 재심 과정에서 과거의 고문 기억이 떠오르는 재트라우마 경험으로 고통받았다고 답했다.
53%는 재판 당시 "정치적 상황 등으로 무죄가 나올지 확신이 없어 힘들었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이 여전히 재심에 불복하는 태도를 보였다', '고통과 시간에 비춰 형사 보상이 너무 미약했다', '쥐꼬리만 한 보상금마저 온갖 수단을 써서 적은 금액을 주려는 치졸함에 분노를 느꼈다' 등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왜 검찰이나 재판부에 고문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냐', '왜 재판정에서 혐의를 시인했냐'라는 질문에 시달린다"며 "재트라우마를 방지하기 위해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인에게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설문 응답자의 79.1%는 배·보상을 받은 후에도 삶이 사건 발생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심지어 본인과 가족이 예전보다 더 불행해졌다고 진술한 피해자들도 있었다.
한 응답자는 "보상금이 과다 지급됐다고 국가로부터 반환 소송을 당해 자택과 은행예금을 압류당하고 경매로까지 내몰리게 됐다"고 했다.
"정치적, 사회적 낙인은 그대로다"라거나 "이웃이 여전히 의심한다"고 한 이들도 있었다.
연구소는 "재심과 국가배상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국가의 책임인데도 국가가 이를 시혜적 조치로 오인해 재심 기간을 지연하거나 배상액을 축소하고 소멸시효를 단축하고 있다"면서 "무죄 판결과 손해배상 후에도 여전히 사회 정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사회에서는 고문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문제는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고문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치유와 재활을 지원하고 국가폭력 가해자에게 내려진 훈·포상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응답자 45% PTSD '심각'…23%는 자살시도 경험도 "올해 제가 81세예요.
고문의 기억이 세월이 가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더 살아나는 것 같아요.
아무리 무죄를 받았다고 해도 딱지가 붙어 다니는 것 같고, 아직도 도망가는 꿈을 꿉니다.
" (고문 피해자 A씨)
"고춧가루를 개어서 콧속에 집어넣고 물 붓고, 그게 끝나면 전기 고문하고 그랬죠. '네 가족은 어떻게 할 거야? 자식들 어떻게 할 거야?' 그건 못 견디겠더라고요.
" (고문 피해자 B씨)
간첩 조작사건, 반독재 시국사건 등을 이유로 고문 등 국가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수십 년째 신체·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거나 국가배상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다시 경험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8일 인권의학연구소가 최근 공개한 '고문 피해자 인권상황 후속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간첩 조작사건,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으로 국가폭력을 당한 피해자와 가족 응답자 가운데 45.6%가 심각한 수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는 형사 재심소송이나 민사배상소송으로 배·보상을 받았거나 소송을 진행 중인 국가폭력 피해자 73명(당사자 68명, 가족 5명)을 설문 조사하고, 22명을 심층 인터뷰해 분석한 결과가 담겼다.
설문 응답자들은 출소 이후 고문 후유증 외에도 이혼·이사·친척과 거리감 등 가족관계 변화(58.6%), 보안 관찰(75%), 취업제한(74.7%) 등으로 사회적 낙인과 고립,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20.6%는 알코올중독 증상이 있고, 23.2%는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는 "고문 피해가 일어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정신적 후유증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며 "심층 인터뷰한 피해자의 경우 거의 모두가 불면증, 알코올 의존, 대인 기피, 정서 불안, 집중력 장애 등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재심과 손해배상 소송은 피해자들이 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 역시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응답자 가운데 64명이 고문 피해와 관련한 형사 재심소송을 제기해 63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86.9%는 재심 과정에서 과거의 고문 기억이 떠오르는 재트라우마 경험으로 고통받았다고 답했다.
53%는 재판 당시 "정치적 상황 등으로 무죄가 나올지 확신이 없어 힘들었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이 여전히 재심에 불복하는 태도를 보였다', '고통과 시간에 비춰 형사 보상이 너무 미약했다', '쥐꼬리만 한 보상금마저 온갖 수단을 써서 적은 금액을 주려는 치졸함에 분노를 느꼈다' 등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왜 검찰이나 재판부에 고문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냐', '왜 재판정에서 혐의를 시인했냐'라는 질문에 시달린다"며 "재트라우마를 방지하기 위해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인에게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설문 응답자의 79.1%는 배·보상을 받은 후에도 삶이 사건 발생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심지어 본인과 가족이 예전보다 더 불행해졌다고 진술한 피해자들도 있었다.
한 응답자는 "보상금이 과다 지급됐다고 국가로부터 반환 소송을 당해 자택과 은행예금을 압류당하고 경매로까지 내몰리게 됐다"고 했다.
"정치적, 사회적 낙인은 그대로다"라거나 "이웃이 여전히 의심한다"고 한 이들도 있었다.
연구소는 "재심과 국가배상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국가의 책임인데도 국가가 이를 시혜적 조치로 오인해 재심 기간을 지연하거나 배상액을 축소하고 소멸시효를 단축하고 있다"면서 "무죄 판결과 손해배상 후에도 여전히 사회 정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사회에서는 고문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문제는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고문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치유와 재활을 지원하고 국가폭력 가해자에게 내려진 훈·포상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