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액 22억원 누락·호프집 지출 의혹은 소명 납득 가"
"개인계좌 모금·보조금수익 누락은 의문 여전"
회계사 2명에 정의연 회계 의견 물으니…"위상에 비해 불성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기부금 사용이 불투명하다는 의혹과 함께 관련 회계처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연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세청도 정의연의 회계 처리에서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고 재공시를 요청할 계획이지만 정의연 측은 단순 실수라며 '회계 비리' 의혹은 부인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16일 정의연과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국세청에 제출한 2018년·2019년 기준 '공익법인 결산서류'(결산서류)와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명세서)를 현직 회계사 2명에게 보내 회계처리 실태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회계사들은 그간 언론과 정치권에서 제기된 의혹 중 '단순 실수'로 소명되는 항목도 있지만, 개인 계좌를 이용한 기부금 모집이나 보조금 수입 기재 누락처럼 자료나 정의연 측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소명되지 않아 의도를 의심받게 하는 사례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 소속 회계사 A씨는 "한 마디로 대충 기재됐다"며 "장부만 놓고 보면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찾을 수 없어 기업이었다면 '감사의견 거절'을 낼 것 같다"고 총평했다.

감사의견 거절이란 외부 회계법인이 감사 대상 회사의 재무제표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근거 자료가 부실할 때 내는 입장이다.

상장사라면 상장폐지 사유가 된다.

국내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B씨는 "월별 기부금 지출 총액과 항목별 지출 총액이 다를 정도로 기본 덧셈도 맞지 않는 서류"라며 "전문가가 검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B씨는 "직원이 소수인 시민단체에서 회계보고서 작성이 쉽지 않겠지만 정의연 정도의 국제적 시민단체 위상에는 걸맞지 않게 회계가 너무 불성실하게 작성됐다"고 평가했다.

회계사 2명에 정의연 회계 의견 물으니…"위상에 비해 불성실"
◇ 이월금 22억원 증발설·호프집 지출 논란은 소명 가능
두 회계사 모두 결산서류 기재 전반에 대해서는 혹평했지만, 제기된 각종 의혹 중 일부는 정의연·정대협의 소명을 납득할만한 부분도 있다고 봤다.

이들은 2019년 정의연 결산서류에서 전년도에서 넘어왔어야 할 기부금 이월액 22억원이 누락된 것을 두고는 단순 실수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정의연이 국세청에 제출한 2019년 결산서류에는 이월액 22억원이 빠져 있지만, 명세서에는 22억원이 이월됐다고 기재됐다.

B씨는 "이월된 22억원이 실제로 사라졌다면 2019년 재무상태표에서 22억원어치 구멍이 생겨야 하는데 그런 구멍은 없다"며 "실제 법인계좌 등을 확인해봐야 하지만 일단은 단순 기재 실수로 보인다"고 했다.

3천만원이 넘는 기부금을 호프집 한 곳에만 쓴 것처럼 결산서류에 기입해 벌어진 논란도 정의연 측 소명을 납득할만하다는 게 회계사들 설명이다.

정의연은 2018년 '모금사업' 명목으로 사용한 3천300여만원의 지급처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프집 운영사 1곳만 명시했다.

해당 호프집은 정의연이 그해 모금행사 장소로 쓴 곳이다.

이에 대해 정의연은 3천300여만원이 2018년 50개 지급처에 140여건 지급한 모금사업비 지출 총액이며, 지출금액이 가장 큰 곳을 대표 지급처명으로 입력했다고 해명했다.

정의연 명세서에는 이 단체가 실제로 매월 모금사업을 한 것으로 기재됐다.

제기된 의혹처럼 한 호프집에서 하루에 3천300여만원을 사용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국세청의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의 공시 작성법'에는 한 해 지원한 금액이 100만원 미만인 개인이나 단체를 합산해 적을 때만 대표 지급처를 기재하도록 한다.

사용액이 100만원이 넘은 곳의 지출은 명세를 별도로 기록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해당 지침이 2019년 3월에 개정된 만큼 2018년 회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정의연이 해당 결산서류를 제출한 시기가 2019년 4월이고, 결산서류 작성도 이미 개정된 서류 양식을 바탕으로 한 만큼 바뀐 지침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회계사들은 설명한다.

정대협의 2019년 재무상태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와 관련해 부채 7억5천만원이 새로 잡힌 것도 처리 과정이 미숙했지만 설명은 된다는 것이 회계사들 판단이다.

정대협은 2012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10억원을 기부받아 이 가운데 7억5천만원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쉼터를 지었다.

이 부동산을 매각할 경우 모금회에 기부금을 반환해야 해 2019년 회계에서 부채로 잡았다는 것이 단체 측 해명이다.

공동모금회 측도 "기부금을 주면서 매수한 부동산을 일방적으로 처분할 수 없으며 사업 변동이 생길 경우 반환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회계사 A씨는 "기부를 받으면 돌려줄 필요가 없으니 법인 자산이 되는 것이 맞지만 반환한다는 약정을 했다면 부채로 잡을 수 있다"며 "다만 처음부터 부채로 회계를 잡아야 했는데 중간에 바꾼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정의연이 기부금 지출 수혜 인원을 99명, 999명 등으로 임의로 기재한 데 대해 A씨는 "인원을 정확히 기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인원은 회계처리에서 큰 영향이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회계사 2명에 정의연 회계 의견 물으니…"위상에 비해 불성실"
◇ '기타'로 묶은 항목 과다…개인 계좌 모금·보조금 누락은 여전히 의문
이처럼 정의연의 설명과 국세청에 지출한 명세서를 토대로 어느 정도까지는 소명이 가능한 사안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소명되지 않아 계속해서 의심을 받는 항목도 있다.

정의연은 2019년 결산서류에서 기부금품 지출 명세서를 작성하며 총 기부금 지출액(약 8억6천200만원)의 절반 이상인 4억6천900만원을 '기타'로 묶어 한 번에 표기했다.

전체 기부금 사용액의 절반 이상이 '기타'라는 항목 아래 들어가 어떻게 썼는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대협의 2019년 결산서류에도 지급처를 '기타'로 묶은 지출액(약 4천500만원)이 총 지출액(약 1억4천800만원)의 3분의 1가량이다.

이 역시 국세청 지침에 따라 건당 100만원이 넘는 지출은 별도로 명시해야 한다.

해당 서류가 문제없으려면 '기타'로 묶은 항목은 모두 건당 지출액이 10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A씨는 "지급처별로 따로 기재해야 하는 것을 기타로 묶어 한 번에 표기한 것은 다른 지출처를 숨기려는 의도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연과 정대협 대표자였던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인이 두 단체에서 활동하던 기간에 법인이 아닌 개인 명의 계좌로 기부금을 받은 것도 지적 대상이 된다고 회계사들은 말한다.

윤 당선인은 2018년과 2019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자 개인 계좌를 통해 장례비용과 조의금을 받았다.

이런 사실이 최근 문제가 되자 정의연은 "상주 자격으로 계좌를 공개했고, 조의금은 금원 성격상 기부금으로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기부금품법은 명칭이 어떻든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전이나 물품'을 기부금으로 정의하고 있어 조의금도 기부금으로 봐야 한다고 회계사들은 지적한다.

아울러 1천만원 이상을 기부금으로 모으려면 모집 전 행정관청에 기부금 목적과 목표액, 방법, 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모집계획을 등록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모집 후에는 사용명세를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정의연은 이에 대해 "모금된 금액이 1천만원 미만이므로 기부금품법 위반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액을 둘러싼 당사자들의 설명이 어긋나는 등 아직 소명이 온전히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윤 당선인은 최근 언론을 통해 2019년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 때 개인 계좌로 약 1억2천700만원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정의연도 앞서 2019년 2월 '고 김복동 할머니 시민장례추진위원회' 이름으로 낸 보도자료에서 '조의금 중 2천만원을 여성·인권·평화·노동·통일단체 10곳에 기부하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들 10명에게 200만원씩 2천만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정의연은 그해 4월 17일 수요시위에서 예정보다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 대학생 자녀 25명에게 200만원씩 총 5천만원을 전달했다.

A씨는 "당연히 법인 계좌로 기부금을 받고 투명하게 회계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개인 계좌를 사용하면 법인 계좌에서는 확인이 안 되기 때문에 장부 처리를 고의로 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B씨도 "모집금이 1천만원을 넘었는데 신고하지 않았다면 기부금품법 위반"이라며 "윤 당선인이 본인 계좌와 영수증 등을 공개해 기부금 사용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지 않으면 횡령이나 사기로도 의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연과 정대협이 정부 보조금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것도 두 회계사는 문제로 봤다.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에 따르면 정의연은 지난해 서울시와 여성가족부에서 약 7억1천7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러나 정의연은 보조금 수입을 5억3천800만원만 명기했다.

2018년에도 서울시에서 1억원을 지원받았지만 보조금 수익에서 누락했다.

정대협 역시 2018년과 2019년에 여성가족부에서 각각 3억3천만원과 3천만원을 지원받았지만 결산서류에서 누락했다.

B씨는 "단순 실수라기엔 전체 회계 규모와 비교해 누락된 부분이 너무 크다"며 "일반 기업이었다면 탈세나 자금 횡령을 위해 일부러 수입을 누락했다고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