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김치 수출액은 1억달러를 넘었다. 2012년 이후 7년 만이다. K팝 열풍으로 한식 소비가 늘었고, 발효 식품에 대한 관심이 커진 영향이다.미국에서 판매되는 김치 제품만 300개가 넘는다. ‘한국산 김치’는 일반 제품에 비해 10~30%가량 가격이 비싸다. 문제는 이 점을 악용해 값싸고 맛이 다른 외국산 김치들이 태극 마크를 달거나 ‘한국 김치’라는 라벨을 달고 있다는 것. 미국 1, 2위 김치인 ‘킹스김치’와 ‘서울김치’는 모두 미국 기업이다.농림축산식품부는 이처럼 해외에서 외국산 김치가 한국산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고 국산 김치 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국가명 지리적 표시제’를 도입했다. 올 8월부터는 김치에 들어가는 모든 원료가 국산일 경우, 국내에서 생산한 경우에만 ‘대한민국 김치(Korea Kimchi)’로 표기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다.개정안의 취지는 좋지만 일부 기업은 김치 수출장려정책이 수출을 막는 또 다른 족쇄가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배추와 무, 고추 등 주요 재료가 국내 이상 기후와 재해 등으로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100% 국내산으로 할 경우 안정적인 가격으로 원재료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관 이슈도 있다. 국가별 허용되는 농약 성분은 다 다르다. 예컨대 국내 고추 재배에 널리 사용되는 ‘헥사코나졸’은 미국에선 금지 물질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국내 수출기업들이 각 나라의 수출 기준에 맞게 일부 재료는 외국산을 사용한다”며 “김치 수출량이 늘어야 국산 무와 배추의 소비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농심과 삼양식품은 지난달 말부터 이어진 황금연휴 기간에 쉬지 않고 공장을 돌렸다. 연휴에 출근하는 직원에게 특근비를 지급하면서 계속 라면을 생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외 라면 수요가 폭증해서다. 삼양식품과 농심의 수출량은 올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0%, 30% 늘었다. 미국에 있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 공장도 지난 2월 말부터 주말 없이 완전 가동하고 있다.농심 삼양식품 CJ제일제당뿐만이 아니다. 올해 들어 4월 말까지 한국 식품 수출액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축·수산물을 포함한 식품 수출액은 23억8000만달러.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했다. 업계는 올해 첫 100억달러 수출 달성을 기대하고 있다.식품업계는 코로나19가 한식 글로벌화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맛과 안전성에서 인정받는 한국산 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방탄소년단 등 K팝 스타들의 활약까지 겹치면서 한식이 세계인의 식탁에 ‘메인’으로 올라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수출 품목을 보면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 가공식품 중에선 라면 수출 증가율이 34.5%로 가장 높았다. 김치 수출 증가율도 30.7%였다. 과자류(20.7%) 쌀가공식품(20.9%) 고추장(13.6%) 등도 고르게 수출량이 늘었다. 가공식품뿐 아니라 돼지고기 닭고기 버섯 곡류 등 농·축·수산물도 두 자릿수 수출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를 현지에서 조리하는 한식당도 세계 90개국 3만여 개로 늘었다. 10년 전에 비해 식당 수가 262% 증가했다.손은경 CJ제일제당 마케팅담당 부사장은 “미국 주류 사회에서 한국 식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2~3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며 “일식 중식 등 다른 아시안 음식과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웰빙 식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그 선두엔 기업들이 서 있다. 30년 전부터 신라면 수출을 외쳐온 농심, 미국 최대 냉동식품회사 인수에 거액을 베팅한 CJ제일제당, 불닭볶음면을 세계인의 도전 과제로 만든 삼양식품, 세계에 한국 과자 맛을 전파한 오리온 등이 그 주역이다.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미국에선 요즘 집밥 메뉴로 ‘만두’가 뜨고 있다. 인기 셰프이자 엔터테이너 조지 듀란은 여러 방송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부활절 특별 메뉴’로 한국식 만두를 소개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유명 인플루언서들도 만두와 닭강정, 잡채 등 한국 음식을 시식하는 콘텐츠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서 만두는 일본식 ‘교자’나 중국식 ‘덤플링’으로 불렸다. 만두를 한국 발음 그대로 불리게 한 주역은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다. 비비고 만두의 작년 해외 매출 비중은 60%를 넘어섰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한국 식품업계에 글로벌화를 위한 도약대가 되고 있다. 영화 ‘기생충’ 인기에 힘입은 짜파구리(농심)의 선전, 식을 줄 모르는 불닭볶음면(삼양식품) 열풍 등과 맞물려 세계 시장에서 ‘K푸드’가 유례없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 주도로 추진됐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던 한식 세계화가 드디어 민간의 힘으로 결실을 보고 있다”(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분석이 나온다.정부 주도는 실패…첨병은 기업한식 세계화는 2000년대부터 정부의 중점 사업이었다. 떡볶이 막걸리 비빔밥 등 한식 3대 수출 품목을 지정하기도 했고, 한식 재단을 설립해 예산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러나 용두사미(龍頭蛇尾)였다. 단일 품목, 장인 육성 등에서 해법을 찾다 보니 전파 속도에 한계가 있었다. 음식을 ‘산업’이자 ‘문화’로 보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한식을 전파한 첨병은 기업이다. 식품 기업들은 일찌감치 가공식품으로 승부했다. 더 빨리, 더 많이 한국의 맛을 전파하기 위해 오래 보존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에서 답을 찾았다. 농심과 풀무원은 30여 년 전부터, CJ제일제당도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두드렸다. 농심은 중국 미국 등 해외 4개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연간 약 1500억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 4년간 12개 해외 식품·바이오 기업을 인수했다.기업들은 세계의 밥상을 점령하기 위해 유통망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여왔다. CJ제일제당은 미국 내 최대 물류망과 냉동식품 공장을 보유한 1위 기업 슈완스를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농심은 월마트 전 점포와 미 의회, 국방부 등에 신라면을 입점시켰다. ‘불닭볶음면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는 삼양식품은 중국 온오프라인 채널은 물론 이슬람 문화권과 미국, 유럽 등의 글로벌 판매 채널을 확보했다.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크로거의 스콧 엘리스 구매담당 임원은 “한국 라면은 간식에서 식사 메뉴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며 “일반 가정에서 치즈 신라면을 끓여먹는 게 유행”이라고 말했다.세계 식품시장은 ‘무국적’ 전쟁터전 세계 식품시장 규모는 연간 6조7342억달러에 달한다. 자동차, 철강, 정보기술(IT)산업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다. 성장 가능성도 연평균 3.6%로 여느 산업군보다 높다. 한국 식품기업은 그동안 내수 위주였다. 지난해 국내 매출 상위 15개 식품 회사의 실적(51조6433억원)을 다 합해도 세계 1위인 네슬레 매출(116조원)의 절반에 못 미친다.전문가들은 ‘K푸드 세계화’가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한다. ‘한식’이 중요한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는 시점에 미국, 일본, 중국 등의 기업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베트남 음식을 파는 ‘포호아’, 멕시칸 음식이 주메뉴인 ‘치폴레’와 ‘타코벨’ 등은 미국 브랜드다. 원조는 따로 있지만 모두 미국인들이 산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남성호 CJ제일제당 트렌드전략연구소장은 “한국 식문화는 이제 10년 이상 가는 메가 트렌드가 될 길목에 있다”며 “이 같은 분위기가 30년 이상 지속될 때 ‘문화’의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선도기업 키우고 규제 풀어야정부는 작년 8월 ‘한식 진흥법’을 공포했다. 한식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알리고 관련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한식의 발굴과 복원은 물론 해외 우수 한식당을 지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식품업계는 CJ제일제당, 농심과 같은 선두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한다.지난해 말 두부와 장류(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등 제조업 5개 업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2025년까지 대기업은 해당 사업의 인수 및 개시, 확장을 원칙적으로 할 수 없게 됐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과 함께 위반 매출의 5% 이내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정부는 수출용 제품 및 신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혼합장, 소스류, 가공 두부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식품기업들은 여전히 혁신 제품 개발에 제약이 크다고 지적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장류는 대기업 투자를 통해 한식 대표 제품으로 키울 수 있는 품목”이라며 “국내 출시가 어려워 투자 등이 위축되면 K푸드 세계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