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콘텐츠 인사이드] 홈페스트에 담긴 '연결'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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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길어지자 접촉 욕구 커져
각자 찍은 영상 이어 붙이며
공감과 협력의 의미 재발견"
김희경 문화부 기자
각자 찍은 영상 이어 붙이며
공감과 협력의 의미 재발견"
김희경 문화부 기자
처음엔 모두 공포에 떨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낯선 전염병 앞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서로를 경계하고 적의에 찬 말들을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혼자만의 생존을 위한 고립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연결과 협력의 본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본능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탄생한 인류가 오랜 시간 생존하고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연결과 협력의 표현 방식은 축제(fest)로 나타났다. 맹수에 잡아먹히지 않고 오늘도 살아있다는 기쁨. 그 기분을 해가 지고 나면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나누었던 것을 원형으로 한다.
이번에도 세계 곳곳에서 작은 축제가 열렸다. 다만 한 공간에 모일 수 없게 되자 색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각자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췄다. 이를 영상으로 찍고 이어 붙였다. 그리고 유튜브에 올려 사람들을 위로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홈페스트(home fest)’ 영상이다. 셀린 디옹, 레이디 가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와 배우들이 참여하기도 하고, 일반인이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중 영국 웨스트엔드 배우 70명이 제작한 홈페스트 영상은 큰 화제가 됐다. 영상은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을 격려하는 말로 시작된다. 한 배우의 얼굴이 나오더니 두 명, 세 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삽입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부른다. 손에 꽃을 든 채 노래하기도 하고, 북을 치는 손동작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한다. 마지막 화면은 70명의 얼굴로 가득 찬다. 이들의 음성을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겹겹이 쌓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난달 런던극장연합회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 영상의 조회 수는 95만 건에 달했다. 각국 네티즌은 노래 가사를 되뇌는 댓글을 달았다. “어둠은 결국 끝나고 태양이 밝아오리라.” 이렇게 인류는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새로운 연결 방식을 찾아냈다. 영상 콘텐츠를 통해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있다고 느끼면서 말이다.
홈페스트 영상뿐 아니라 수많은 공연도 온라인에 올라왔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을 제작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유튜브에 자신의 작품을 공개했다. 국내 공연장·예술단체들도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온라인에 올렸다. 많은 사람은 평소 쉽게 보지 못했던 명작들을 찾아보며 위안을 얻었다. 위기 상황이 닥치자 예술가들은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의 발달을 떠올리며 활용하고, 대중은 그들의 재능이 담긴 콘텐츠를 적극 수용하고 즐긴 것이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연결이다.
코로나19 시대 이전, 사람들은 연결에 지쳐 있었다. 회사, 학교에서 타인과 연결돼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고 귀찮았다.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더욱 그랬다. 수많은 SNS와 메신저로 맺어진 관계는 지나치게 피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불쑥 찾아온 ‘언택트(untact·비대면) 사회’가 약간은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립의 시간이 길어지자 ‘콘택트(contact·접촉)’ 욕구가 커져만 갔다. 생각해보면 피하고 싶은 건 연결 자체가 아니었다. 연결의 본질을 훼손하는 잡다한 문제로 인해 힘겨워했을 뿐이다. 사실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싶었고, 또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이 있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다 언택트 사회가 다가오자 그 본질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간결할수록 아름답다(Less is More)”고 했듯 단절과 비움으로 보이지 않던 것을 보기 시작했다.
연결은 각자의 생존 본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류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하며 발전해왔다. 이번 위기에서도 개인 간 연결은 공동체를 지키는 ‘연대’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들 한다. 슬프지만 이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 언젠가 종식된다 해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는 서로를 보호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다른 이들을 위해 노래 부르고, 이를 찍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바이러스와 싸워 이긴 뒤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함께 노래 부를 그날을 기다려본다.보첼리·BTS도…홈페스트로 코로나 극복 응원
“우리는 각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모였다.”
미국 CBS 방송의 인기 토크 쇼 ‘더 레이트 레이트 쇼’의 진행자 제임스 코든은 지난 3월 ‘홈페스트(home fest)’ 방송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사람들의 안전한 분리를 위한 새로운 연결. 홈페스트 영상은 코로나19 시대에 이런 이유로 탄생했으며, 빠르게 확산됐다.
홈페스트 영상 제작엔 각국의 유명 인사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코든의 홈페스트엔 미국 팝스타 두아 리파, 이탈리아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한국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등이 나왔다. 지난달 8시간 동안 진행된 ‘원 월드: 투게더 앳 홈’에는 주최자인 레이디 가가를 비롯해 엘튼 존, 샘 스미스 등이 등장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프로젝트 그룹 슈퍼엠도 출연했다. 국내에선 뮤지컬 ‘모차르트!’에 출연하는 김준수, 김소향 등 배우 22명이 삽입곡 ‘황금별’을 노래하는 홈페스트 영상을 제작했다.
홈페스트 영상엔 기부 캠페인이 같이 열리기도 한다. ‘원 월드’ 영상 공개와 함께 시작된 기부 캠페인에선 3500만달러(약 430억원)가 넘는 돈이 모였다. 홈페스트 영상은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따뜻하고 소중한 마음까지 연결하고 있다.
hkkim@hankyung.com
그리고 연결과 협력의 본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본능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탄생한 인류가 오랜 시간 생존하고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연결과 협력의 표현 방식은 축제(fest)로 나타났다. 맹수에 잡아먹히지 않고 오늘도 살아있다는 기쁨. 그 기분을 해가 지고 나면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나누었던 것을 원형으로 한다.
이번에도 세계 곳곳에서 작은 축제가 열렸다. 다만 한 공간에 모일 수 없게 되자 색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각자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췄다. 이를 영상으로 찍고 이어 붙였다. 그리고 유튜브에 올려 사람들을 위로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홈페스트(home fest)’ 영상이다. 셀린 디옹, 레이디 가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와 배우들이 참여하기도 하고, 일반인이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중 영국 웨스트엔드 배우 70명이 제작한 홈페스트 영상은 큰 화제가 됐다. 영상은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을 격려하는 말로 시작된다. 한 배우의 얼굴이 나오더니 두 명, 세 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삽입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부른다. 손에 꽃을 든 채 노래하기도 하고, 북을 치는 손동작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한다. 마지막 화면은 70명의 얼굴로 가득 찬다. 이들의 음성을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겹겹이 쌓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난달 런던극장연합회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 영상의 조회 수는 95만 건에 달했다. 각국 네티즌은 노래 가사를 되뇌는 댓글을 달았다. “어둠은 결국 끝나고 태양이 밝아오리라.” 이렇게 인류는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새로운 연결 방식을 찾아냈다. 영상 콘텐츠를 통해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있다고 느끼면서 말이다.
홈페스트 영상뿐 아니라 수많은 공연도 온라인에 올라왔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을 제작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유튜브에 자신의 작품을 공개했다. 국내 공연장·예술단체들도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온라인에 올렸다. 많은 사람은 평소 쉽게 보지 못했던 명작들을 찾아보며 위안을 얻었다. 위기 상황이 닥치자 예술가들은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의 발달을 떠올리며 활용하고, 대중은 그들의 재능이 담긴 콘텐츠를 적극 수용하고 즐긴 것이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연결이다.
코로나19 시대 이전, 사람들은 연결에 지쳐 있었다. 회사, 학교에서 타인과 연결돼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고 귀찮았다.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더욱 그랬다. 수많은 SNS와 메신저로 맺어진 관계는 지나치게 피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불쑥 찾아온 ‘언택트(untact·비대면) 사회’가 약간은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립의 시간이 길어지자 ‘콘택트(contact·접촉)’ 욕구가 커져만 갔다. 생각해보면 피하고 싶은 건 연결 자체가 아니었다. 연결의 본질을 훼손하는 잡다한 문제로 인해 힘겨워했을 뿐이다. 사실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싶었고, 또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이 있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다 언택트 사회가 다가오자 그 본질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간결할수록 아름답다(Less is More)”고 했듯 단절과 비움으로 보이지 않던 것을 보기 시작했다.
연결은 각자의 생존 본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류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하며 발전해왔다. 이번 위기에서도 개인 간 연결은 공동체를 지키는 ‘연대’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들 한다. 슬프지만 이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 언젠가 종식된다 해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는 서로를 보호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다른 이들을 위해 노래 부르고, 이를 찍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바이러스와 싸워 이긴 뒤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함께 노래 부를 그날을 기다려본다.보첼리·BTS도…홈페스트로 코로나 극복 응원
“우리는 각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모였다.”
미국 CBS 방송의 인기 토크 쇼 ‘더 레이트 레이트 쇼’의 진행자 제임스 코든은 지난 3월 ‘홈페스트(home fest)’ 방송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사람들의 안전한 분리를 위한 새로운 연결. 홈페스트 영상은 코로나19 시대에 이런 이유로 탄생했으며, 빠르게 확산됐다.
홈페스트 영상 제작엔 각국의 유명 인사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코든의 홈페스트엔 미국 팝스타 두아 리파, 이탈리아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한국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등이 나왔다. 지난달 8시간 동안 진행된 ‘원 월드: 투게더 앳 홈’에는 주최자인 레이디 가가를 비롯해 엘튼 존, 샘 스미스 등이 등장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프로젝트 그룹 슈퍼엠도 출연했다. 국내에선 뮤지컬 ‘모차르트!’에 출연하는 김준수, 김소향 등 배우 22명이 삽입곡 ‘황금별’을 노래하는 홈페스트 영상을 제작했다.
홈페스트 영상엔 기부 캠페인이 같이 열리기도 한다. ‘원 월드’ 영상 공개와 함께 시작된 기부 캠페인에선 3500만달러(약 430억원)가 넘는 돈이 모였다. 홈페스트 영상은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따뜻하고 소중한 마음까지 연결하고 있다.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