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 퍼주는 4兆로 해야 할 일
가장 실망스런 대목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실종이다. 부자들의 생활비를 댈 만큼 국고에 여유가 있다면 취약계층에 대한 추가 지원부터 검토하는 게 바른 수순이다. ‘상위 30%’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용돈이지만 ‘존버’ 중인 한계선상의 약자들에게 4조6000억원은 너무 크고 절실하다. 전국의 일용직(75만 명), 파견·용역직(165만 명), 특수고용직(220만 명) 근로자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5개월간 지원할 수 있는 돈이다. ‘1인 가게’를 힘겹게 지키는 전국 영세자영업자 400여만 명에게 100만원씩 돌려도 5000억원이 남는다.
악전고투 중인 기업 지원에 투입한다면 수십조원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보증배수가 12~13배인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에 4조6000억원을 넣으면 55조~60조원의 보증여력이 생긴다. 채권담보부증권(P-CBO) 방식을 통하면 연내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31조8000억원)의 대부분을 차환해줄 만큼 인수 여력이 커진다. 기획재정부가 직접 담보 재원으로 끌어 쓸 경우 한국은행으로부터 10배인 46조원까지 유동성을 지원받을 수 있다.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자금을 ‘부자 퍼주기’로 낭비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와 중소·중견기업에는 생존의 위협이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절박한 호소를 무시하는 행태는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겠다’는 ‘포용 국가’의 약속과 너무 동떨어진 모습이다.
'무늬만 포용' 3년, 약자들의 고난
뒤죽박죽 혼란스런 정책이 재난지원금만은 아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진 포용 정책들도 실은 무책임한 ‘포용 코스프레’였을 뿐이라는 의구심이 광범위하다. 포용정책 1호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보자. 3년이 흘렀지만 비정규 비율은 오히려 역대 최고다. 군사작전하듯 밀어올린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정규직 중심으로 급여가 살짝 올랐지만 수많은 저소득자가 고용시장 바깥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냉정히 보자면 약자를 희생시키며 이기적인 중산층이 제 주머니를 불린 셈이다.
‘무늬만 포용’의 폐해는 빠른 양극화에서 극명하다. 저소득층에 온갖 수당을 쥐여주며 생색을 냈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소득양극화는 역대급으로 벌어졌다.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자산 양극화는 더 심각하다. 정부는 집 가진 사람을 투기꾼으로 몰고, 3년간 19차례의 투기방지 대책을 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은 폭등했다. 너무 올라버린 탓에 서민과 청년은 내집 마련이란 꿈도 꾸기 힘들어졌다. 잘못 꿴 정책이 부동산을 ‘서민 착취’의 통로로 만들어버렸다.
이대로면 ‘포용 국가’는 물 건너가고 ‘포용 코스프레 국가’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총선 압승에 고무된 정부는 더한 밀어붙이기를 구상 중이다. 포용 코스프레의 최대 수혜자이자 목소리 큰 중산층 화이트칼라를 중심으로 ‘이대로 쭉~’을 외치는 흐름도 커졌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정치와 지성은 무기력”(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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