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ETN 대혼란, 무엇이 문제였나

상장지수증권(ETN)이란 파생상품 때문에 국내 투자자들이 한 달 넘게 마음을 졸이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락한 이후 ‘오른다’에 베팅하며 원유ETN을 사들이긴 했는데, ETN 주가와 원유선물 가격(실제 가치) 간 괴리율이 555%(지난 4일 기준)까지 확대돼서다. 괴리율이 줄지 않아 3일간 거래가 정지된 뒤에도 ‘유가 재하락→괴리율 확대→거래 정지’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몰리며 지난달 하루 평균 거래대금(4123억원)은 작년 말보다 20배 뛰었다. 개인투자자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준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에 이어 이번에는 ETN에서 왜 문제가 터지고 있는지 뿌리를 파헤쳐 봤다.

ETN은 원자재, 통화, 금리, 변동성 등의 가격(또는 지수)이 만기에 이르는 동안 어떻게 변동했는지 보고 거기에 맞춰 수익금 지급을 약속하는 증권이다. 기준점이 되는 자산(기초자산)은 DLS와 비슷한데, 거래소에 상장시켜 언제든 사고팔 수 있게 해 환금성이 좋다. 원유ETN은 원유선물 가격의 움직임을 따르며 수익을 추구한다. 상장 증권이라 주가가 일반 주식처럼 매일 변한다.

지난달 22일엔 한 종목의 괴리율이 2078%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적정 가격이 1000원인 원유ETN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2만원 넘게 거래됐다는 뜻이다. 역사적인 유가 움직임과 비교해 지금의 유가가 과하게 떨어졌다고 해도 언제, 얼마나 반등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게 시장이다. 그런데도 선뜻 이해가 안 되는 괴리율이 나타나고, 투자자들은 지금도 원유ETN에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시장에선 몇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먼저, 유가가 역대 최저 수준인 만큼 앞으로 무조건 오를 것으로 여기면 ‘비싸더라도 사서 묻어두자’는 투자자가 늘어날 수 있다. 원유ETN의 만기는 1년부터 길게는 20년까지 있다. 가장 거래량이 많은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ETN’ 만기는 2027년이다. 둘째, 물량의 상대적 희소성이다. 국내 14개 원유ETN의 시가총액은 종목별로 수백억~수천억원에 불과하다. 물량이 달려 증권사들이 ETN을 추가 상장하더라도 실제 공급까지 시일이 걸리고 기껏 몇천억원어치밖에 풀지 못하니 비싼 가격에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한 증권사 ETN 담당자는 “만기가 길게 남은 종목에선 상장폐지 같은 일만 벌어지지 않으면 돈을 벌 거라며 괴리율보다 품절이나 거래 정지를 걱정한다”고 전했다.

의욕 앞선 금융당국의 '개문발차'

전형적인 ‘묻지마 투자’와 거래 과열은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금융당국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ETN은 특히 더 그렇다. 시장 관계자들 얘기를 종합해 보면 당국은 2014년 11월 ETN 시장을 개설하면서 ‘투자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해 주가가 하락하면 어쩌나’를 주로 걱정했다. 주가가 실제 가치를 밑돌 경우 증권사가 실제 가치대로 증권을 매수해주는 유동성공급자(LP) 제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반대로 주가가 지금처럼 실제 가치를 크게 추월해 괴리율이 과도해질 경우 증권 추가 발행(공급)과 매도를 얼마나 신축적으로 할지, 과열 진정을 위해 어떤 세부 대책이 필요한지 꼼꼼히 준비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극단적인 시장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적었다. 괴리율이 플러스(+)로 과도하게 높아져도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시장을 열었다”고 털어놨다. 한국거래소가 ETN 시장이 과열된 지 한 달이 지난 지난달 7일에야 부랴부랴 거래 정지 제도를 마련하고, 미국처럼 상장폐지(자진 청산)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이 코로나19로 인한 이례적인 상황이고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측면에서 금융당국과 거래소 등도 미리 규율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괴리율이 한 달 이상 크게 벌어지는 부분에 대한 제도적 미비는 지적받아 마땅하다. 금융당국이 ETN과 관련해서는 ‘개문발차(開門發車)’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한 파생상품 전문가는 이같이 분석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주식 선물 옵션 등 직접투자 상품 쪽이 강하고, 유럽에선 ELS DLS 같은 구조화 금융상품이 발달했다. 국내 금융당국은 양쪽을 다 관장하고 관리하겠다는 의욕을 보여 왔다. 문제는 그럴 정도의 전문성과 시장 조성 및 관리감독 능력이 뒤따르지 않는데 의욕이 앞섰다는 점이다.”

ETN 시장 개설이 침체된 증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1년 중반부터 2017년 초까지 거의 6년간 코스피지수는 1800~2000에 갇힌 ‘박스피(박스권 코스피) 장세’를 지루하게 이어갔다. ETN이 도입된 2014년 당시 다양한 투자 상품 제공이란 명분을 걸었지만 고객 자금의 증시 유치, 이를 통한 시장 활성화가 더 급했던 것이다.

경제도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굳어지면서 장기 침체를 걱정할 때라 ‘중(中)위험·중(中)수익’을 지향하는 새 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고민이 업계와 금융당국을 지배했다. ETN은 장외 파생상품 수요를 장내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어 당시 수익 기반을 확충하려던 한국거래소의 필요와도 맞아떨어졌다.

'中위험·中수익'의 맹점

그러나 막상 도입하고 보니 ETN은 위험이 만만치 않은 상품이었다. 채권 같은 저위험·저수익도, 주식처럼 고위험·고수익도 아니어서 그냥 뭉뚱그려 중위험·중수익이라고 표현했을 뿐, 그 위험도와 변동성은 무시할 수 없는 크기였다. 청산할 경우에도 상장지수펀드(ETF)는 펀드 보유 자산을 매각해 투자자에게 일부 돌려줄 수 있지만, 보유 자산 자체가 없는 ETN은 청산 시점의 기초자산 가격으로 손실이 확정될 뿐이다. 투자자 매수가 늘어나면 원유ETF 운용사는 원유 선물을 더 많이 매수하고 그만큼 ETF를 더 발행할 수 있다. 그러나 ETN에는 손쉬운 추가 발행 메커니즘이 없어 물량 공급을 신축적으로 하기 어렵다.

ETN 시장의 대혼란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 ELS DLS 금융사고와 투자자 손실을 트라우마처럼 떠올리게 한다. ELS 헤지거래 및 시세조종 사건(2009년), 홍콩 H지수 급락에 따른 ELS 투자 손실(2015년), 해외금리 연계 DLS 투자로 인한 원금 손실(2019년) 등이 그런 예다. 여기선 고객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하방 위험(기초자산의 급격한 가격 하락)이 문제였다. 이렇게 위험한 상품을 은행 같은 곳에서 판매토록 허용한 제도의 맹점이 크게 비판받았다.

금융 불신 더 키워서는 안 돼

ETN은 상방(주가 상승)과 하방 모두 위험이 뚫려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런 점에서 금융당국과 발행 금융회사들이 투자 과열을 막고 투기적 수요라도 그 손실을 최소화하는 시장관리 능력이 있는지 되묻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투자자들의 금융 불신의 골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한국 금융회사들은 고객 자산을 불려주기는커녕 수수료 챙기기에만 열을 올린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머릿속에 짙게 남아 있다.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들도 “(판매하는) 금융상품이 개인에게 유용한 자산관리 수단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기 어렵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시장관리 능력 제고와 제도 성숙을 통해 ‘고객=호갱’이란 인식을 해소해나가는 게 금융시장 선진화의 중요 과제임을 원유ETN 사태가 새삼 깨닫게 해준다.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