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전씨 집 앞에 세우고 싶어…시민의 분노를 알아야"
'전두환 치욕 동상' 제작한 정한봄씨 "법 대신 민심의 심판"
"법의 심판은 피할 수 있더라도 민심의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
손과 발이 묶여 무릎을 꿇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형물이 올해 4월 27일 전씨의 재판이 열리는 광주지법 앞에 등장했다.

하얀 상복을 입은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전씨 조형물의 뺨을 때리며 지난 40년의 울분을 토했다.

이 조형물을 제작한 건 경기도 파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정한봄(65) 씨.
그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사람도, 광주가 고향인 사람도 아니다.

그는 단지 "전두환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분노하고 혐오하는 많은 사람 중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12·12군사반란부터 5·18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 박정철·이한열 사건 등 전씨의 수많은 악행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이 조형물 제작을 마음먹었다.

'전두환 치욕 동상' 제작한 정한봄씨 "법 대신 민심의 심판"
정씨는 "전씨의 권력욕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사죄는커녕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다"며 "전씨가 법의 심판을 받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돼 다른 형태로라도 응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소 정씨와 교류하던 노무현 대통령 경제수석 출신 김태동 교수와 공직자 출신 류현선씨가 선뜻 제작비를 보탰다.

특히 류씨는 암 투병 중이었지만 흔쾌히 제작비를 지원해줬다.

이들의 도움으로 정씨는 지난해 6월부터 조형물을 만들어줄 작가를 찾아 나섰다.

경기·강원·전북 등지를 발로 뛰어다녔지만, 제작하겠다는 작가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제작을 해보자던 작가들도 일주일 만에 못 하겠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정씨는 "이 조형물을 만들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더욱이 '예술성'을 중요시하는 작가들이 '상징성'을 강조해 달라는 정씨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두 달간의 수소문 끝에 양형규 작가를 만나 지난해 10월 조형물을 완성했다.

당초 전씨가 부적절하게 대통령에 오른 날짜인 8월 27일에 맞춰 공개하려던 계획이었지만 제작 날짜를 맞출 수 없어 12·12 군사 반란 일인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했다.

누구나 조형물을 때릴 수 있도록 한 이 조형물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길을 지나던 시민들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쏟아냈고, 2주 만에 조형물의 머리 부분이 부서져 버렸다.

'전두환 치욕 동상' 제작한 정한봄씨 "법 대신 민심의 심판"
정씨는 "조형물은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로 만들어져 절대 사람의 손이나 발로 부술 수 없다"며 "각목 등 도구로 내리쳐 부서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사람이 공유해야 하는 작품이 과격한 표현으로 망가진 것은 안타깝지만 이렇게라도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수리를 마친 조형물은 전씨가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하는 광주지법 앞에 설치됐다.

정씨가 조형물을 제작할 때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일이다.

전씨의 재판이 끝나자 5·18 최후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앞에 설치됐다.

정씨는 5·18단체가 조형물을 잘 관리해 줄 수 있다면 기증하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언젠가 한 번은 전씨가 사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 앞에 이 조형물을 세워두고 사죄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싶다는 게 정씨의 바람이다.

시민의 분노를 전씨가 알았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정씨는 "전두환을 응징하지 못하고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것은 산 자의 부끄러움"이라며 "다시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끔 책 속에 있는 역사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역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