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키우는 할머니, PC 소리 안 나와 '끙끙'…쉴 시간 없는 교사
"'ㅇㅋ' 사용하면 안되고, 채팅방에서 같은 말로 도배하지 마세요"
초등 온라인개학은 '부모개학'…하품 생중계에 "어머! 죄송해요"
"소리가 잠겼네.", "어머, 선생님 죄송해요.

"
중학교와 고등학교 1~2학년과 초등학교 4~6학년이 온라인으로 개학한 16일.
이날 서울 용산구 용산초등학교 5학년 창의반 학생 22명도 '생애 첫' 온라인개학을 맞이했다.

초등학생들의 원격수업을 지켜보니 온라인개학이 '부모 개학', '조부모 개학'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용산초는 이날 오전 9시 화상회의서비스 '줌'(Zoom)을 활용해 온라인 개학식을 열었다.

6학년 학생 91명이 개학식에 참여해야 했지만 86명만 모습을 보였다.

전용재 교장은 "개학식은 줌, 원격수업은 EBS 온라인클래스로 진행되는데 개학식을 위해 줌에 접속해야 하는 것을 잊고 온라인클래스에만 접속한 학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산초는 앞으로 매일 6학년과 5학년은 오전 9시, 4학년과 3학년은 오전 10시, 2학년과 1학년은 오전 11시 온라인조회를 할 예정이다.

1교시 수업은 모든 학년이 오전 9시에 시작한다.

창의반 첫 수업은 담임인 송미경 교사와 학생이 온라인으로나마 처음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오전 9시 25분 송 교사가 출석을 확인하고자 온라인조회를 시작하기 5분 전, 학생들이 모두 접속한 상태에서 한 학생의 할머니가 "소리가 잠겼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생중계됐다.

할머니는 손주의 컴퓨터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전했다.

소리 문제는 조회가 끝난 오전 10시 10분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이 탓에 송 교사는 조회가 끝난 뒤 잠깐 쉬는 시간에도 쉴 수 없었다.

소리 문제 때문에 전화 온 학생의 할머니에게 줌에서 스피커 설정을 바꾸는 법을 안내해야 했다.

또 오전 10시 30분에 다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30분에' 수업을 시작하는지 '30분 후' 수업을 시작하는지 묻는 학생에게 수업 시작 시각을 다시 설명해줘야 하기도 했다.

한 학생의 하품 소리가 생중계되기도 했다.

옆에 있던 학생의 어머니가 당황한 목소리로 "어머, 선생님 죄송해요"라고 곧바로 사과했다.

앞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3학년이 온라인으로 개학했을 때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초등학생은 보호자가 옆에 붙어있어야 원격수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송 교사는 학생들에게 원격수업이 학교에 나와서 하는 등교수업과 마찬가지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특히 '네티켓'을 지켜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송 교사는 학생들에게 "'ㅇㅋ'와 같은 줄임말은 사용하지 말고 (채팅에서도)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해 친구들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면서 "(원격수업도) 정규수업이니 잠옷처럼 '저렇게 입고 학교에 올 수 없는데'하는 옷 말고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수업하면서 학생들에게 채팅창에 같은 말을 반복해서 쓰는 이른바 '도배행위'를 말라거나 수업과 관련된 말만 하라고 여러 번 말했다.

이런 당부를 반복한 이유는 이를 지키지 않은 학생이 많아서였다.

송 교사는 또 "교실에서는 여러분이 뭐 하는지 선생님이 딱 볼 수 있지만, 원격수업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원격수업) 프로그램 창을 내리고 몰래 SNS나 게임을 하는 학생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초등 온라인개학은 '부모개학'…하품 생중계에 "어머! 죄송해요"
중·고등학교에서는 온라인개학으로 기존보다 학습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면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사회적 생활 태도'를 익히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제일 크다.

학생들이 각자의 집에서 따로 수업을 들으며 '사회생활'이 없다 보니 향후 생활에서 필요한 언어·생활예절을 못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은 중고생보다 원격수업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이날 광진구 양진초 6학년 1반 수업 때는 이런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반도 줌을 이용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진행했는데 21명의 학생 가운데 몇 명은 교실에 취재진이 있다는 말에 웹캠을 꺼 수업 중에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한 학생은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헤드셋을 벗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나마 이날 6학년 1반 수업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어서 교사가 학생들을 관찰하고 집중을 잃을 때마다 질문을 던져 다시 집중하게 유도할 수 있었지만, 기존에 만들어진 강의 영상을 보는 '콘텐츠 활용형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의지' 외에는 수업에 집중하게 할 요인이 딱히 없다.

양진초 교장은 "1반 선생님은 기계에 익숙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가능했지만 이렇게 기계를 잘 다루는 교사가 많지는 않다"면서 "대부분 수업이 단방향인데 아이들이 20분 정도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