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 메시지 안 나와…저강도 군사행보로 대미 자극 자제 연장선 재자원화법 제정은 고육책…퇴역장교 생활 안정법 제정해 충성 끌어내기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속에서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자립 토대 구축과 민생에 집중하며 내치 다지기에 나섰다.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북제재에 '정면돌파전'으로 맞서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지면서 추가적인 하락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또 예상했던대로 대미·대남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이미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 북미 교착 장기화 국면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데다 최근 저강도 군사훈련으로 대외적으로 자극적 행보를 삼가는 모양새다.
북한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3차회의에서 제정한 '재자원화법', '원격교육법', '제대군관(장교) 생활조건 보장법' 등 3개 법령은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난 돌파와 내부 결속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민생과 경제난 돌파를 위한 개혁적 조치는 나오지 않은 채 현상 유지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재자원화법은 대북제재로 노동자 파견과 석탄 수출 등 외화벌이 출구가 거의 막힌 데다 수입도 어려운 상황에서 내놓은 그야말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재자원화는 최근 북한 경제의 '중요한 전략'으로 급부상하고 있는데, 허리띠를 졸라매고서라도 자력으로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노선 실현의 일환이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올해 들어 각종 폐기물을 "무진장한 원료 원천"이라고 표현하면서 수매가격을 올리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이번 회의에서는 제재에 코로나19 사태까지 이중고 속에서 주민생활 안정과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나름의 민생 조치를 내놓았다.
북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전체 예산지출의 47.8%를 경제건설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제대군관 생활조건 보장법'은 오랜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장성 및 장교 출신의 퇴역군인들을 위한 생활 안정을 위한 법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김정일 체제의 '선군정치'로 군 복무가 중시되고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주민들의 군 복무는 일상화됐다.
하지만 시장화가 확산하면서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한 상당수 장교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장 생계가 곤란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우대 법령을 통해 주민들을 국가를 중심으로 묶어 내고 체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읽힌다.
또 이번 회의에서는 여전히 북한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재확인하면서도 보건부문에 대한 투자를 작년보다 7.4% 늘리고 평양종합병원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계획대로 보장할 것이고 밝혀, 주민 생활 안정 의지를 과시했다.
지난 11일 열린 당 정치국 회의에서도 노동당·국무위원회·내각 공동 결정서 '세계적인 대류행전염병에 대처하여 우리 인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을 더욱 철저히 세울데 대하여'가 채택됐다.
최고지도자가 주민 생명과 안전을 가장 중시한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어려움에 지친 불만을 잠재우고 민심을 다독이는데 주력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원격교육법은 인재육성을 통해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자립경제를 건설하겠다는 김정은 정권의 장기발전 전략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원격교육법 자체가 인터넷 시대에 맞는 교육시스템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올해 교육부문 지출을 지난해보다 5.1%, 과학기술 부문에는 9.5% 늘리는 등 다른 부문에 비해 예산 지출액을 늘렸다.
아무리 어려워도 교육과 과학기술 발전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북한 지도부의 장기 청사진이 읽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민생과 보건 등 애민 분야에 대한 예산증액으로 자력갱생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을 돌리려는 의도도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각 현안 논의에서 보고자와 토론자들이 일제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회의에서는 "지난해 국가예산 집행에서는 결함도 있었다"며 "경제지도일꾼들이 맡겨진 혁명임무를 당과 인민 앞에 전적으로 책임지는 입장에서 작전과 지휘를 해나가지 못한다면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를 실현할 수 없고 경제 전반이 활력 있게 전진할 수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집권 후 노동당 회의나 내각 회의, 김 위원장의 시찰 비판 발언들을 공개하고 관영 매체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일상화됐는데, 이제는 정기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도 이어지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