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김동호씨, 경로당·요양원 다니며 사랑 실천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위로받고 있습니다.

"
[#나눔동행] 20년 넘게 이발 봉사 "어르신들에게 제가 위로받아요"
지난 7일 오후 제주지방경찰청 구내 이발소에서 만난 김동호(65)씨.
17살에 이용업에 발을 디딘 이래 50년 가까이 '가위손' 인생을 살아온 김씨는 베테랑 이발사답게 가위질에 거침이 없었다.

자르고 다듬기를 반복하는 가위질 소리가 시계 소리마냥 규칙적이면서도 부드럽고 살가웠다.

가위질이 끝나자 능숙한 손길로 비누 거품을 내더니 면도칼로 손님의 수염도 밀어냈다.

김씨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자 손님은 금세 말끔한 모습으로 변했다.

김씨의 능력은 비단 이발소뿐만 아니라 경로당과 요양원에서 더 빛이 났다.

그는 거동이 불편해 머리 손질을 하러 이발소나 미용실에 가기 힘든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이발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시골에 홀로 살다 세상을 뜬 아버지 생각에 시작한 봉사였다.

김씨는 "어느 날 아버지 머리카락이 많이 긴 것을 보고 시골에서 누군가 이발을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농어촌 어르신을 대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무작정 이발소나 미용실이 없는 농어촌 경로당을 찾아다녔다.

경로당에 홀로 가서 이발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등을 갈아 끼우고, 방충망을 수리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는 등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눔동행] 20년 넘게 이발 봉사 "어르신들에게 제가 위로받아요"
그의 선행이 입소문을 타서인지 인근 요양원에서도 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씨는 요양원에서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의 머리를 깎으며 옛날 노래를 자주 부른다고 했다.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어르신도 익숙한 노랫가락이 나오면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 때문이다.

어르신과 추억을 더듬으며 마음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머리를 깎는 짧은 시간이지만, 정답게 얘기를 나누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사이 나이를 뛰어넘어 서로 '벗'이 됐다.

김씨는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것은 물질이 아닌 '관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서귀포 용흥에 사는 93세 할머니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안부 전화를 한다"며 "바람이 불 때, 날씨가 춥거나 더울 때 언제든 전화를 하면 할머니가 정말 좋아한다.

평소에 서로를 생각하는 유대감, 관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활동을 "봉사가 아닌 '섬기는 것'"이라며 "그분들이 계시니 제가 가서 도울 수 있고 함께 얘기하다 보면 저 역시 위로받는다.

언젠가 저도 늙어 경로당에 있게 된다면 누군가 머리를 깎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20년을 훌쩍 넘겼다.

김씨는 현재 경로당과 요양원 4곳, 홀로 사는 노인 2명을 따로 돕고 있다.

한 달에 2∼3차례씩 정기적으로 다닌다.

[#나눔동행] 20년 넘게 이발 봉사 "어르신들에게 제가 위로받아요"
김동호씨의 미담은 또 있다.

김씨는 10여년 전 라디오를 듣다 우연히 '풀어서 남주기'라는 퀴즈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출연자 3명과 퀴즈실력을 겨뤄 운 좋게 1등을 하게 됐다.

당시 김치냉장고와 컴퓨터, 일반 냉장고 등 3가지 상품 중 2개는 남을 주고, 1개는 본인이 가질 수 있었지만 모두 도내 한 청소년 복지센터에 기부했다.

김씨는 마음이 있어도 선뜻 봉사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단 문을 두드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이 없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도울 수 있다.

노래를 불러줘도 되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만 들어줘도 된다"며 '시작이 반'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요양원의 요양사분들은 그야말로 헌신하는 천사와 같은 사람들"이라며 "굉장히 고된 일임에도 언제나 웃으며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요양사분들에 대한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며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지난 2월부터 경로당, 요양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다시 어르신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