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나를 엿보다 = 정재곤 지음.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이면서 정신분석, 심리치료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가 지난 20여년간 일상과 사회, 문화와 문화 차이, 가족과 자녀 교육, 나와 타자 사이에서 해온 고민과 사유를 담았다.

44편의 정신분석학 에세이를 통해 저자가 지금까지 겪었고 또 많은 사람이 겪었을 다양한 삶의 경험을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내면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심리치료의 다양한 국면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이 종이 박스와 같이 움푹하게 들어간 곳에 둘러앉길 좋아하는 것이나 어른이 돼 오지 여행을 즐기는 것은 '모태 회귀' 본능의 발로다.

세상살이가 힘겨울 때마다 태아 시절 열 달 동안 체류한 엄마 배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일상에서 비켜난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본능이다.

청소년들의 정신적 불안정을 일컫는 '바닷가재 콤플렉스'라는 용어도 설명한다.

바닷가재가 성장을 위해 이제까지 어린 몸을 감싸고 있던 작은 허물을 벗어 던지고 더 커다란 보호막을 구축하기 전까지는 바깥의 자극과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남성성, 여성성을 문득 발견하게 된 청소년들이 정신적 불안에 따라 과도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바바리맨'이 벌이는 노출은 '거세 콤플렉스', 즉 거세를 갈구하는 무의식적 욕망에서 비롯한다.

바바리맨이 경찰에 잡히는 것은 거세 욕망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고 따라서 그는 체포되기 위해 '깜짝쇼'를 벌이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궁리. 292쪽. 1만5천원.
[신간] 나를 엿보다·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도널드 홀 지음, 조현욱·최희봉 옮김.
미국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저자가 여든이 넘어 쓴 에세이 14편을 모았다.

2018년 89세로 작고한 저자의 마지막 책이다.

저자는 "젊었을 때부터 현재를 견딜 수 없어 미래에 살았다"면서 "노인이 된 지금에서야 현재에 집중한다"고 고백한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의 삶은 야망이나 미래, 계획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기에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늙음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늙음이 가져오는 불편을 토로하면서도 휠체어를 타고 미술관에 가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들은 멀리서만 볼 수 있는 명작을 우선순위로 볼 수 있다고 농담을 덧붙인다.

70이 넘으면서 죽음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됐다는 저자는 과거에 여든셋까지 살고 싶다고 했던 자신의 말을 떠올리며 "여든넷 생일에 안도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동아시아. 240쪽. 1만5천원.
[신간] 나를 엿보다·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김누리 지음.
독어독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독일'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비정상성을 낱낱이 비춘다.

독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분단을 거쳤고 통일 후 한국과 인구 규모가 유사하며 철저한 과거 청산, 사회 복지와 경제 성장의 균형을 이룬 점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부분이 많다.

저자는 한국이 거듭되는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매년 자살률 1위와 출산율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심각한 불평등 사회가 된 근본 원인을 '68혁명'의 부재와 기만적인 정치 구조, 맹목적인 야수 자본주의, 분단 체제에서 찾는다.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가 68혁명을 통해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사회적으로 구현해 갈 때 한국은 더 큰 억압 속으로 빠져들어 가 약 50년의 '문화 지체 현상'이 나타났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의 정치 지형은 '진보 대 보수'라는 대립 구조를 띤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독일의 보수 정치인이 한국에 오면 극좌파로 몰릴 정도로 우경화돼 있고 국회의원의 96%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구조 속에서 개인들의 자기착취와 소외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의 기저에는 수구세력의 존립 명분을 제공하고 국민들을 불안으로 몰아가는 분단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해냄출판사. 260쪽. 1만6천500원.
[신간] 나를 엿보다·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