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의 신성장론] '창조형 인적자본'으로 성장엔진 대전환해야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리라”는 마틴 루터의 경구가 생각나는 때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폭발적 확산이 경제에도 전염돼 단기적으로나마 큰 충격을 가할 가능성이 증폭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해 오늘 우리 경제가 심어야 할 ‘한 그루 사과나무’는 무엇일까?

온갖 충격을 겪은 한국 경제의 지난 60년은 장기 성장 패턴이 완전히 다른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60년 이후 30년은 지속적인 초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성장의 황금시대’였다. 그러나 패턴이 돌변해 1990년 이후 30년은 성장률이 ‘5년 1%포인트 하락 법칙’에 따라 하강하는 ‘성장 추락의 시대’가 됐다.

왜 갑자기 성장이 추락하기 시작했을까? 경제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전반 30년은 인적 자본(지식)과 물적 자본(기계)이 동시에 축적되면서 지속적 고도성장이 일어난 ‘내생적 성장이론의 시대’다. 반면 후반 30년은 성장이 물적 자본에만 의존해 성장률이 하락하는 ‘신고전파 성장이론의 시대’였다(2월 21일자 A33면 ‘성장 황금시대의 비밀’ 참조). 결국 지난 30년간의 성장 추락은 성장의 주 엔진인 인적 자본 축적이 정체되면서 성장이 물적 자본에만 의존한 것에 기인한다.

그런데 인적 자본 축적이 정체된 시기에 놀랍게도 한국의 인적 자본에 대한 지출은 크게 증가했다. 공교육 지출이 199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4.7%에서 2010년대 7.6%까지 증가했다. GDP 대비 2% 수준의 사교육비를 더하면 GDP 대비 교육 지출이 압도적인 세계 1위가 될 정도로 늘어났다.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왜 인적 자본 축적이 정체됐을까?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지난 30년간 엉뚱한 인적 자본에 잘못 투자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2007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공저한 논문에서 인적 자본을 모방형과 창조형으로 구분했다. ‘모방형 인적 자본’은 기존 지식이나 기술의 모방을 통해 축적한 인적 자본을 말한다. ‘창조형 인적 자본’은 새로운 지식·기술을 스스로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능력 또는 그 능력을 통해 축적한 인적 자본을 의미한다.

1960년 이후 30년은 모방형 인적 자본의 가치가 매우 높아 이에 대한 투자가 최적인 시기였다. 이에 한국은 ‘콩나물 교실’로 대표되는 자원집약형 교육제도와 ‘4당 5락’으로 상징되는 경쟁적 입시를 통한 시간절약형 주입식·암기식 교육제도, 낮은 조세율 등의 정책 대응을 통해 선진 지식 및 기술을 빠르게 체화해 모방형 인적 자본을 급속히 축적하고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당시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의 기술 발전 단계가 낮아 선진국의 특허 제약에 걸리지 않고 모방해 이용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한국의 기술 수준이 전 산업에 걸쳐 선진국에 근접하면서 특허로 보호되는 선진국 기술 모방이 어려워져 모방형 인적 자본 축적이 한계에 부딪혔다. 또 2000년대 들어 컴퓨터와 인터넷, ‘알파고’로 상징되는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달로 기존 지식과 계산능력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체화한 모방형 인적 자본의 상당 부분이 급속히 무용지물로 바뀌었다.

결국 새로운 지식·기술을 스스로 창출해야만 성장엔진인 인적 자본의 효율적 축적이 가능한 시대가 30년 전부터 도래한 것이다. 따라서 창조형 인적 자본을 새로운 성장의 주 엔진으로 대전환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패러다임 대전환 없이 지난 30년을 허송세월했다. 아직도 주입식, 암기식, 문제풀이식 교육이 답습되는 가운데 학생들의 아까운 노력과 시간 그리고 수많은 자원이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이면 찾아볼 수 있는 온갖 지식을 외우는 데 낭비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1위 수준의 교육 투자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인적 자본의 축적은 정체되고 장기성장률은 0%대를 향해 추락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창조형 인적 자본’을 촉진하는 혁명적 경제·사회·교육 정책을 추진해 성장 추락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는 것만이 ‘5년 1%포인트 하락 법칙’과 제로 성장의 위기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이 현대 경제성장이론이 시사하는 교훈이고, 오늘 우리가 심을 한 그루의 사과나무다. 다른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