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루이비통 제친 오프화이트
지난해 최고 인기 브랜드로 뽑혀
가나계 미국인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사진)가 만든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 오프화이트가 명품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창립 8년밖에 안 된 이 브랜드는 지난해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검색 엔진 리스트가 꼽은 2019년 ‘최고의 인기 브랜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를 다툰 99년 역사의 구찌를 넘어서며 ‘희소성’과 ‘오래된 역사(헤리티지)’ 없이도 명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권위 버리고 인지도 높여
오프화이트는 2012년 탄생했다. 신생이지만 20~30대 사이에서는 이미 ‘하이엔드(highend·명품)’ 패션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반팔 면 티셔츠가 30만~40만원대, 나일론 재질의 백팩은 60만원대다. 바지 또는 치마는 한 벌에 100만원을 넘는다. 고가지만 사람들이 ‘오프화이트 옷을 입을 때 태그를 떼냐 마냐’로 논쟁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오프화이트는 명품의 기본인 희소성을 버렸다. 전통 명품이 내세우는 권위 대신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브랜드와 적극적으로 협업했다. 눈에 띄는 디자인이 그 자산이었다. 2017년 말 출시한 ‘오프화이트X나이키’ 프로젝트는 오프화이트에 대한 글로벌 관심을 일으킨 계기였다. 에어포스, 조던, 척 테일러 등 나이키 및 나이키 자회사 컨버스의 인기 모델 10종에 오프화이트 특유의 흑백 사선 디자인을 입혔다. 구글트렌드에서 검색이 급증한 게 이때였다.
오프화이트의 협업은 업종을 넘나든다. 가구 업체 이케아,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와 함께 각각 러그 등 생활용품과 향수를 내놨다. 독일의 여행 캐리어 제조업체 리모와와도 컬래버레이션을 했다. 각 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브랜드라는 공통점이 있다.
명품 소비시장의 큰손이 된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도 적극 활용했다. 인기 협업 제품은 20~30대가 많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에서 추첨해 판매한다. 오프화이트의 공식 계정을 팔로한 뒤, 해시태그(#)를 달아 리그램(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재게시하는 것)하는 이들만 참여할 수 있다. 신제품 공개 방식도 다르다. 지난해 초 서울 삼성동 공유 오피스 ‘위워크’에서 국내 팝업 스토어를 열고 신제품을 공개했다. 주요 소비층이 모일 만한 장소에 직접 찾아가겠다는 전략이었다.
예술이 된 상업 패션
오프화이트는 예술적인 요소도 적극 활용했다. 모나리자를 크게 프린팅한 후드티는 오프화이트를 상징하는 제품. 이 전략은 역사랄 것이 없는 브랜드 이미지에 정체성을 더해줬다. 18세기 독일 화가 안톤 라파엘 멩스가 그린 얼굴 없는 초상화로 알려진 ‘마리아나 드 실바의 초상’을 넣은 코트, 20세기 미국 팝 아티스트 장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넣은 옷들도 내놨다. 지난해엔 루브르 박물관과도 손을 잡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다빈치 명화 컬렉션을 공개했다.
현대 예술을 연상시키는 브랜드 탄생 과정도 오프화이트 마니아를 사로잡았다. 아블로가 2012년 첫선을 보인 ‘파이렉스 비전’이 시작이다. 40달러짜리 중고 폴로 셔츠에 미국의 주방용기 업체 ‘파이렉스(Pyrex)’의 이름과 마이클 조던의 백넘버 ‘23’을 찍어 550달러에 팔았다. 이 마케팅은 마르셸 뒤샹의 오브제를 연상시키며 예술적 마케팅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블로도 각종 표절 논란에 휘말릴 때마다 “마르셸 뒤샹은 나의 변호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오프화이트란 브랜드로 제품을 정식 출시했다.
아블로의 이력도 브랜드 파워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유명 래퍼 카녜이 웨스트의 스타일리스트, 가구 디자이너 및 DJ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루이비통 164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디자이너로 영입되며 오프화이트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