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면도기 브랜드의 이익률이 애플보다 높아요. 그만큼 물건을 비싸게 판다는 얘기죠. 싸고 품질 좋은 면도기를 선보이면 시장에서 통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국내 면도기 시장에 돌풍이 일고 있다. 만 4년도 안 된 스타트업 와이즐리가 주역이다. 경쟁사에 비해 최대 50% 저렴한 가격에 면도기를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로 해외 브랜드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초 내놓은 국내 면도기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와이즐리의 시장 점유율은 6.2%다. 업계에선 최근 들어 와이즐리 점유율이 더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가 본사 사무실에서 자사의 면도용품을 소개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가 본사 사무실에서 자사의 면도용품을 소개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3월 출시 신모델도 가격 똑같아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는 ‘스타트업 면도기’의 성공 비결을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어서”란 말로 요약했다. “뺀 것부터 말해달라”고 하자 “유통 채널”이란 답이 돌아왔다.

현재 와이즐리의 면도기를 살 수 있는 통로는 회사의 웹페이지뿐이다. 김 대표는 “생활용품 가격에 거품이 끼는 것은 유통 마진 탓”이라며 “여러 커머스 업체에서 입점을 요청하지만 가격 상승을 우려해 들어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면도기 시장의 대세인 진동 기능도 제외했다. 손잡이 안에 건전지를 넣어 면도날이 떨리게 하면 피부에 상처가 덜 난다는 것은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대신 날의 절삭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와이즐리는 독일의 한 공장과 독점 계약을 맺고 면도날을 들여오고 있다. 김 대표는 “창업 초기 단계에 사용자 테스트를 한 결과 이 공장 제품이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넣은 것’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3월 나오는 새 모델엔 고무 프로텍터가 들어간다. 면도할 때 피부를 쭉 잡아당기는 역할을 한다. 피부가 팽팽한 상태에서 날이 지나가야 상처가 덜 난다는 설명이다. 지금 판매되는 면도날은 위아래로만 움직이지만 새 제품은 좌우로도 움직인다. 좌우 움직임이 굴곡진 부위를 면도할 때 도움된다는 게 와이즐리의 판단이었다. 새 모델 가격은 이전 모델과 같다. 김 대표는 “꼭 필요한 기능만 넣어 성능을 높이면서도 원가 부담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제품 업그레이드 방향은 소비자의 목소리를 참고해 정했다. 면도기 탓에 턱이 발갛게 부어오르거나 상처를 입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피부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재구매율 90% 넘어

와이즐리는 소비자가 선택한 일정에 맞춰 제품을 정기 배송해주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 대표는 “와이즐리 고객의 재구매율은 90%가 넘는다”며 “품질 관리에 집중하는 전략이 통했다”고 강조했다. 높은 재구매율은 와이즐리가 제품을 싼 가격에 판매하면서도 수익 구조를 탄탄히 유지하는 배경이다.

정기 배송 서비스는 회사에도 좋지만 고객 건강에도 유익하다. 아무리 좋은 면도날도 2주 이상 교체하지 않으면 무뎌지고 부패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정기 배송을 이용하면 번거롭지 않게 날을 자주 바꿀 수 있어 턱 피부 건강에 좋다”고 설명했다.

와이즐리는 면도 부위에 바르는 셰이빙 젤도 판매한다. 김 대표는 “한 조사에 따르면 면도할 때 셰이빙 젤 또는 크림을 사용하는 사람이 18%에 불과한데, 와이즐리 고객은 정기 배송을 통해 셰이빙 젤을 선택 구매할 수 있어 절반 이상이 이를 사용한다”고 했다.

최근 구독 모델을 내세우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김 대표는 “구독은 수단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가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구독 서비스는 회사에만 좋은 사업 모델”이라며 “와이즐리는 구독 모델을 통해 건강한 면도 습관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면도기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와이즐리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스킨 로션, 두피케어 제품을 출시해 남성의 피부 관리를 모두 책임지는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면도기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과 과장광고 등 소비자의 불편이 존재하는 시장”이라며 “가성비 높은 제품들로 승부수를 띄우겠다”고 말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