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 중인 일본 여성이 혼자 음식점을 방문했다가 푸대접을 받았다. 이에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본명 박재한)도 사과했다. 유튜브 채널 '시골 언니 아유미'를 운영하는 일본 여성 아유미는 지난 12일 '식당 사장님이 화나서 무서워서 울 뻔한 일본인의 부대찌개 먹방'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게재했다. 한국에 애정을 보이며 "자주 방문한다"는 아유미는 해당 영상에서 서울의 유명 부대찌개 식당을 찾은 모습을 공개했다. 아유미는 '부대찌개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해당 식당을 찾았지만, 들어서자마자 사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에게 "1인분은 안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에 아유미가 "2인분을 달라"고 하자, 남성은 한숨을 쉬며 "거기 앉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거듭 "1인분은 원래 안 판다"면서 무안을 줬다. 결국 아유미는 "죄송하다"며 "여기 부대찌개가 너무 맛있다고 들어 왔다"고 사과했다. 영상에도 '사장님이 기분이 나빠 보인다. 밥 먹는데 슬픈 기분'이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식당 측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아유미에게 부대찌개 1인분을 만들어줬다. 그렇지만 푸대접은 이어졌다. 소주를 주문한 아유미에게 "미치겠다"며 "술까지 달라고 하네, 낮엔 술을 안판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식당은 손님이 차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다른 테이블 손님 중엔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식당 주인이 아유미에게만 술 판매를 거부한 것. 아유미는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며 "무서워서 심장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식은 죄가 없다"면서 묵묵히 식
원조 ‘K패션’ 중심지인 동대문에 MZ(밀레니얼+Z)세대 패션 시장을 이끄는 무신사가 새롭게 스튜디오를 열었다. 패션 브랜드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해 패션 생태계의 선순환을 도모하겠다는 무신사의 의지가 담긴 공간이다.13일 서울 동대문에 자리 잡은 ‘무신사 스튜디오 동대문종합시장점’을 방문했다. 무신사 스튜디오는 다양한 규모의 사무실 공간을 조성해 창업 초창기 1인 디자이너를 비롯해 중소 및 중견 브랜드들에게도 사업에 필요한 인프라를 지원하는 무신사의 상생 사업 중 하나다. 무신사 스튜디오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를 가진 이 지점도 다양한 사업체가 입주해 작업할 수 있도록 1인실부터 최대 25인실까지의 작업 공간을 조성했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쭉 들어오면 7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라운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라운지를 지나 복도를 따라가면 양쪽으로 사무실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입주자 필요에 따라 업무 공간이나 창고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복도 곳곳에는 사업에 필요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전화 부스가 설치돼 있고 한쪽에는 상품 포장·배송 등 물류 작업을 할 수 있는 패킹존도 마련됐다.무신사 관계자는 해당 지점을 “패션 디자인과 생산에 초점을 맞춘 입주사 전용 특화 공간”이라고 소개하며 두 가지 강점을 내세웠다. 우선 의류 제작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입주사 임직원들은 별도로 마련된 재봉실에서 직접 의류 제작을 할 수 있다. 김희라 무신사 스튜디오 커뮤니티 매니저는 “디자이너들이 직접 의류를 만들 수 있도록 4대의 재봉틀을 구비했다”며 “의류 제작과 생산에 주력
내 눈의 빛이 사라진 걸 생각하니 존 밀턴내 눈의 빛이 사라진 걸 생각하니,이 어둡고 광활한 세상에서 반생도 살기 전에생명 같은 재능이 쓸모없어졌구나.비록 내 영혼은 창조주를 간절히 섬기길 원하나,그분이 훗날 탓할까 봐, 내 한 일을 설명하려 할 때,나는 어리석게 묻네, “내 눈을 멀게 하시고는 어찌 노동을 원하시는지요?”하지만 그 불평을 가로막고 신중한 대답이 들려오네,“신은 인간의 노동이나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네,그의 가벼운 멍에를 가장 잘 메는 자가 그를 가장 잘 섬기나니. 그는 왕과 같네. 그의 말 한마디에 수천의 무리가육지와 바다를 건너 쉬지 않고 달려올 테니.묵묵히 서서 기다리는 자들도 그를 섬기는 사람이네.”--------------------------------------------------------영국 시인 존 밀턴(1608~1674)이 44세 때 시력을 잃고 쓴 시입니다. 그의 실명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전해집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서 눈을 혹사했고, 청교도 혁명 때 크롬웰 정부의 라틴어 비서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과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시의 제목은 원래 ‘소네트 19’였다가 훗날 편집 과정에서 ‘소네트 16’으로 바뀌었습니다. ‘실명(On his blindness)’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시인은 생을 절반밖에 살지 못했는데 벌써 눈이 멀었다고 불평합니다. 이제 내 삶은 끝났다고 한탄하다가 신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 등장하는 ‘생명 같은 재능(Talent)’은 성경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와 맞닿아 있다고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