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정이 팬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며 ‘손가락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잘 웃지 않아 한때 ‘로봇 같다’는 말도 들었다는 그는 “더 자주 웃는 것과 꾸준한 성적을 내는 것을 새해 목표로 정했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임희정이 팬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며 ‘손가락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잘 웃지 않아 한때 ‘로봇 같다’는 말도 들었다는 그는 “더 자주 웃는 것과 꾸준한 성적을 내는 것을 새해 목표로 정했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임희정(20)에게 2019년은 ‘롤러코스터’를 탄 시간이었다. ‘국가대표 에이스’로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했다. 하지만 ‘라이벌’ 조아연(20)이 개막전에서 정상에 서며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그 사이 그는 커트 통과가 급급한 신세가 됐다. 부진이 길어질 때쯤 우승이 터져나왔다. 메이저대회 1승을 포함해 3승. 그가 받은 최종 성적표다. 신인왕은 라이벌에게 내줬으나 상금(4위)에선 조아연(5위)을 앞섰다. 요새 웃을 일이 많아졌다는 임희정을 경기 안성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만났다. 임희정은 “올초만 해도 너무 안 웃어 ‘로봇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언니들이 요즘엔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며 배시시 웃었다.

2000년생인 임희정은 풍족함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밀레니얼 세대’다. 하지만 또래처럼 지난 시즌 초반 자신의 부진을 웃어넘길 여유가 없었다. “독하게 공을 쳤다”는 그는 “헝그리 정신을 알 것 같다”고도 했다.

‘닮고 싶은 스윙 1위’로 동료들이 꼽기도 한 그의 스윙은 독학으로 완성됐다. 스윙을 영상으로 찍어 수만 번 돌려본 결과물이다. “‘스윙 교과서’로 불리는 김효주 언니의 스윙을 따라 하려 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정식 레슨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 고향 강원도 태백 인근에서 한 번씩 열리는 ‘지역 유망주 원포인트 레슨’이 유일한 기회였다. 골프대회가 없으면 레슨도 없었다. 그는 “1년에 한 번뿐인 기회였기 때문에 궁금했던 걸 적어놨다가 몰아서 물어봤다”며 “골프로 성공하고 싶다는 의지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연습라운드 비용이 모자라 스크린골프로 코스를 익히고 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다. 임희정은 “엄마가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도 몇 시간 못 주무신 채 바리바리 내 짐을 싸 대회장에 따라오셨다”며 “그때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짠한’ 감정보단 ‘무조건 골프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성공에 대한 압박과 조급함을 그는 더 강렬한 절박함으로 이겨냈다. 그는 반 시즌 만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임희정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골프밖에 몰랐지만 요즘은 친구들과 다니며 옷도 사고, 노래방도 갈 줄 알게 됐어요. 하하. ‘길거리 음식’도 마음껏 사먹고요.”

임희정은 자신의 성공의 공을 ‘밀레니얼 동기’에게 돌렸다. “우리 ‘공공(00)년생’은 정말 치열하게 경쟁했던 것 같아요. 국가대표 시절에도 경쟁했는데 투어까지 이어졌잖아요. 특히 저를 포함한 루키 3인방인 (조)아연이와 (박)현경이에게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그런 훌륭한 경쟁자가 있던 덕분에 지금의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임희정의 새해 목표는 ‘숨 고르기’다. 지난 시즌 첫 승에 대한 조급함에 발목이 잡혔던 것을 교훈 삼아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제 롤모델이 신지애 선배입니다. 신지애 선배 아버님이 출판한 선배의 자서전을 몇 번이나 읽었고 힘을 얻었어요. 선배님은 저보다 힘든 상황을 이겨냈고 어디서나 정말 꾸준히 잘하시잖아요. 신지애 선배처럼 새해 목표는 꾸준한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중계방송에 자주 잡혀 팬들이 저를 자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또 좀 더 자주 웃을 거예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인 ‘사막여우’도 웃을 때 제 눈이 살짝 찢어져야 닮아 보이니까요. 하하.”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