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철 고려대 교수가 쓴 '나의 장례식'
다가올 죽음을 문학작품으로 승화한 '자만시'
"어느새 무덤이 말 앞에 이르고/ 성명이 저승 명부에 떨어졌구나/ 땅강아지와 개미가 내 입에 들어오고/ 파리 모기떼 내 살을 빨아대네/ (중략) 이때 나는 어떠한 마음이던가/ 혼돈처럼 일곱 구멍이 막혔네"
생육신 중 한 명인 문인 남효온(1454∼1492)은 35살이 된 1489년 스승 김종직(1431∼1492)에게 스스로 쓴 만시(挽詩)를 올렸다.

만시는 죽음에 이른 자를 애도하는 시. 남효온은 특이하게도 자기 죽음을 애도하는 자만시(自挽詩)를 썼다.

그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논하고는 자신이 죽었다고 가정해 장례 풍경을 묘사했다.

어린 제자가 보낸 자만시에 김종직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자만시라는 독특한 장르를 다룬 신간 '나의 장례식'에서 김종직이 특별한 반응 없이 "자기 죽음을 애도한 시에 사실은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담겼음을 지적했다"고 했다.

자만시는 불가능한 상황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중국 남북조 시기에 탄생한 자만시가 조선시대에 사실상 남효온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달관과 비탄이 남효온 자만시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라며 "중국 자만시 시원인 도연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변주한 부분이 더 두드러진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조선시대 자만시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의식은 죽음을 달관하는 자세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에 나의 죽음만 유별나지 않다는 생각, 먼저 세상을 떠난 혈육과 만난다는 마음이 죽음에 초연하게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노광리(1775∼1856)는 임종 며칠 전 아들에게 적게 한 자만시에서 "잠시라도 얼음 밟듯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했고/ 평소에 숨 쉴 때도 죄짓는 듯했지/ 지금 이후에야 내 면할 줄 알아/ 웃음 머금은 채 기쁘게 저승 향하네"라고 읊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자만시는 애써 죽음을 외면하거나 미뤄두었던 자세로부터 극적인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게 한다"며 "본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1인칭의 죽음인 나의 죽음을 타인의 죽음과 같은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객관화하게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자만시는 우리에게 '더는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나의 것임을 받아들여라'라고 말하는 드문 사례라면서 "유언장을 미리 써보는 것처럼 앞으로 죽음 교육에서 선인들의 자만시가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400쪽. 2만2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