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북핵 협상 2년, 초라한 성적표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가겠다며 스스로 정한 ‘연말 시한’이 31일 만료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내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북한이 가려는 길이 뭔지 공개할 것이다.

북한의 과거 발언에 비춰보면 북한이 가려는 길은 ‘비핵화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 김정은은 ‘신년사 예고편’인 지난 2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체제 안정을 위한 공세적 조치를 강조했다.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북핵 협상이 2년 만에 막을 내리거나 적어도 상당 기간 공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핵 협상 초기엔 기대도 컸다. 미·북 정상의 두 차례 정상회담과 한 차례 회동(판문점 회동)은 전례 없는 ‘빅 이벤트’였다. 70년에 가까운 적대관계가 종식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했다.

北의 군사 능력은 오히려 강화

현실은 달랐다. 지금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손에 쥔 성적표는 초라하다.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폐기는커녕 더 강화됐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중에도 핵물질 생산을 계속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역량을 확충했다. 단거리 미사일도 수차례 발사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단거리 미사일은 합의 위반이 아니다’는 ‘선물’까지 받았다. 즉 한국의 안보 위협은 더 커졌다.

둘째, ‘북·중·러 연대’가 복원됐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전만 해도 중국, 러시아와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북핵 협상 과정에서 김정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이들을 ‘북한 편’으로 끌어들였다.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미국이 반대하는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한 건 ‘북·중·러 연대’ 복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셋째, 한국의 발언권이 약해졌다. 북핵 협상 초기엔 한국이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촉진하는 중재자 역할을 했다. 지금은 북한이 한국을 대놓고 무시한다.

한국 정부가 강조해온 ‘평화경제’는 북한의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철수, 금강산 남측 관광시설 철거 발표로 무색해졌다. 북한은 대화와 평화경제를 역설해온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하늘을 보고 웃을)할 노릇”이라고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北 비핵화 약속 믿을 수 있나

한국은 미국과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문제로 한때 엇박자를 노출했다.

한 가지 뚜렷해진 사실도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 정보당국은 일찍부터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지도자들은 핵무기를 정권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공개적으로 정보당국을 불신했지만 지금은 비핵화에 대한 낙관론과도 거리를 두는 듯하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9일 ABC방송에 출연,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22일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관료들이 말하는 북한 비핵화는 ‘블러핑(허세)’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공언해왔다. 아직도 이 말을 믿는지 궁금하다.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