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ADVERTISEMENT

    "'캣츠' 고양이 외모에 놀랄 수 있지만 새로운 시도 자부심"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레미제라블' '캣츠' 톰 후퍼 감독 첫 내한…"마법같은 여정 함께 즐겨주길"
    "'캣츠' 고양이 외모에 놀랄 수 있지만 새로운 시도 자부심"
    "8살 때인 81년 뉴런던 극장에서 뮤지컬 '캣츠'를 본 적이 있어요.

    당시 너무나 매료돼 카세트테이프를 산 뒤, 차에 탈 때마다 닳도록 들었죠. 아직 '캣츠'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 마법 같은 '캣츠'를 소개해주고 싶었습니다.

    "
    뮤지컬 영화 '캣츠'를 연출한 톰 후퍼 감독이 처음으로 내한해 23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취재진을 만났다.

    그는 '킹스 스피치' '레미제라블' '대니쉬 걸' 등을 연출한 감독이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2012)은 국내 개봉 당시 592만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가 '캣츠' 국내 개봉(24일)을 하루 앞두고 내한한 것은 한국 관객들이 뮤지컬 영화를 유독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후퍼 감독은 "'레미제라블' 당시 보여준 한국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전 세계 국가 중 영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한국을 선택해 방문했다"고 말했다.

    '캣츠'는 현재 사전예매량 22만장을 넘기며 '백두산'에 이어 실시간 예매율 2위를 달린다.

    회견에 앞서 공개된 이 작품은 뮤지컬 원작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줬다.

    193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1년에 단 하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밤에 젤리클 고양이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는 내용이다.

    별다른 서사나 대사 없이 화려한 춤과 노래로 가득 차 흡사 뮤지컬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긴 듯했다.

    '캣츠'의 대표곡 '메모리'(Memory)를 비롯해 뮤지컬 넘버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캣츠' 고양이 외모에 놀랄 수 있지만 새로운 시도 자부심"
    그는 "'레미제라블'은 감정적인 작품이라 열정적인 한국 관객들과 잘 맞은 것 같다"면서 "'캣츠'는 원작 뮤지컬에 충실히 하고자 했다.

    퍼포먼스 위주 영화로, 용서와 관용, 친절이라는 주제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원작과 차별점에 대해 그는 "뮤지컬은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이 아이들을 위해 쓴 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 영화로 옮기면서 스토리라인을 강화했다"면서 "노래나 안무 등의 감정을 살리는 데도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특히 순수한 고양이 빅토리아 배역을 주목해달라고 했다.

    후퍼 감독은 "사람들에게 버려진 빅토리아가 젤리클의 다양한 고양이들을 만나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면서 "세상 속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어떻게 보면 옛날 방식의 성장 스토리를 갖고 있다"고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영국 런던 출신인 그는 "뮤지컬은 하나의 무대에서 펼쳐지지만, 영화이다 보니 다양한 세트를 구현한 것 역시 어려웠다"며 "일부 세트는 제가 나고 자란 런던의 비주얼을 구현하려 했다.

    런던에 바치는 일종의 연애 편지 같은 것"이라고 떠올렸다.

    이 작품은 지난 20일 북미에서 개봉된 뒤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배우 얼굴과 몸에 고양이 털과 꼬리, 귀를 컴퓨터 그래픽(CG)으로 합성한 데 대해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다.

    '불쾌한 골짜기'(사람과 유사한 존재를 볼 때 느끼는 감정)에 빠지는 실수를 범했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미국 언론들은 "섬뜩하다" "공포 영화인 줄 알았다" 등의 조롱 섞인 평가를 앞다퉈 쏟아냈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 지수도 18%에 불과하다.

    실제로 '고양이 인간'이 처음 등장할 때는 이질감과 오싹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빅토리아를 연기한 세계적인 로열 발레단 수석 무용수 프란체스카 헤이워드와 주디 덴치, 테일러 스위프트, 제니퍼 허드슨 등 배우들이 혼신의 연기를 펼쳐 시간이 지날수록 이질감은 조금씩 사라진다.

    후퍼 감독은 "다양한 평가가 나오지만, 우리가 선보인 고양이의 외모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라며 "놀랄 수도 있지만 즐겁고 마법과 같은 여정을 함께 하면서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캣츠' 고양이 외모에 놀랄 수 있지만 새로운 시도 자부심"
    회견에는 '메모리'를 한국어 버전으로 부른 가수 옥주현도 참석했다.

    후퍼 감독은 옥주현의 '메모리' 커버송에 대해 "영혼을 담은 공연이었고,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목소리였다"며 "전 세계 유일하게 공식 커버를 허락했는데 그 가수가 옥주현인 이유도 여러분이 아실 것"이라며 칭찬했다.

    옥주현은 "영화는 아직 못 봤지만, 무척 기대된다"고 답했다.

    후퍼 감독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면서 "'기생충'이 오스카 후보에 올랐는데, 저 역시 오스카 투표권을 가진 사람으로 지지한다.

    좋은 성적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ADVERTISEMENT

    1. 1

      15분간 박수갈채...콘서트 오페라 새 역사 쓴 정명훈의 <카르멘>

      "직업 군인 출신의 한 남성이 헤어진 전 동거녀를 흉기로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 피해자로부터 새로운 연인과의 만남을 시작하겠다며 결별을 통보받은 그는, 집요한 스토킹 끝에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사회 뉴스에서 접했을 법한 이 비극적 이야기는 조르주 비제(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의 결말을 요약한 것이다. 집시, 군인, 밀수꾼, 투우사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신화 속 인물이나 역사적 영웅이 아닌, 현실의 인간을 무대 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150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은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장 자주 상연되는 프랑스 오페라가 됐다. 부산 콘서트홀 무대에 콘서트 버전(콘체르탄테) 오페라 <카르멘>이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국내 오페라 팬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테너 이용훈에게 쏠렸다. 세계 최정상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신뢰받는 돈 호세 역의 대표 주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2027년 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부산에 오페라의 DNA를 심겠다”고 공언한 정명훈 감독이 직접 지휘봉을 든다는 점은 이 공연에서 단순한 콘서트 오페라 이상의 사건이 발생할 것을 예상케 했다.지난 19일과 20일 부산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콘서트오페라 '카르멘'은  한국 오페라 역사상 원작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공연으로 기록될 만한 무대였다. 인물의 설정과 가창에서 기존 국내 프로덕션과 뚜렷하게 차별화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카르멘은 흔히 떠올려지는 억척스럽고 과장된 팜 파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었다.몰도바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미셸 로지에의 카르

    2. 2

      "수배합니다"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에 숨은 옛 작곡가의 작품을

      이 글은, 50년째 한 선율의 정체를 탐구해 온 한 사람의 기록이다. 처음에 그는 이 선율의 실체를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다 풀지 못한 실마리를 그는 지금까지도 찾아 헤매고 있다.시작은 이렇다. 반세기 전, 1975년쯤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당시 오후 다섯시 반에 시작되던 정규 TV 방송의 시작 시간을 기다리는 ‘텔레비전 키드’였다. 오늘과 같은 사교육 열풍이 없던 한가로운 시절이었다.정규방송에 앞서 화면을 기하학적 무늬가 채우는 ‘화면조정 시간’이 있고, 그 뒤 관현악곡 두 곡이 연주됐다. 아마도 ‘오늘의 방송순서 안내’를 시작하는 음악과, 이어 정규방송이 시작됨을 알리는 음악이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는 제목을 알고 있었다. 들리브의 발레 음악 ‘코펠리아’ 중 ‘차르다슈’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제목을 알 길이 없었다. 트럼펫과 현악 합주가 함께하는, 경쾌한 듯, 장엄한 듯도 하고, 당당한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분위기의 음악이었다.[레스피기 관현악 모음곡 ‘새’ 중 전주곡]그 일은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의식의 표면 아래로 들어간 그 선율이 다시 표면으로 떠오른 것은 1977년,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여름이었다.당시 서울에서는 주네스 뮈지칼(Jeunesses Musicales·국제청소년음악협회) 세계 총회가 열렸다. 행사의 일환으로 서울 국립극장에서 ‘세계 청소년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열렸다. 국영 TV 방송은 행사와 청소년들이 콘서트를 연습하며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했고,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뒤에는 국립극장에서 열린 콘서트가 잇따라 화면

    3. 3

      로봇과 신 사이의 음악, 시나위가 여는 찰나의 영원

      시나위를 한다는 것은 곧 디오니소스가 되는 것이다여기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역설이 있다. 소리가 아니면서 소리가 되기, 음악이 아닌 것이 음악이 되기, 그 자신이 아닌 것이 됨을 통해 바로 그 자신이 되기. 정신을 잃으면서 동시에 바로 그 정신을 부여잡기. 길을 잃으면서 동시에 길을 찾는 소리의 음악, 길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길을 감추는 시각의 영상. 그런데 이 모든 역설의 의지와 불가능의 추구가 시나위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시나위의 정신은 그렇기에 다시금 디오니소스의 초상에 가닿는다. 소리는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물질화하고, 움직임은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몸짓을 가시화하며, 영상은 비청각적인 방식으로 시각을 청각화한다. 무엇보다 공연의 중심은 소리이나, 그 중심은 또한 그 스스로가 주변이 되며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흩어진다. 흩어진 가락과 부서진 장단, 시나위는 그렇게 디오니소스를 부르는 초혼의 굿이 된다.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여기서 “디오니소스 로봇”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디오니소스와 로봇은 그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일 뿐인가. 로봇으로서의 삶은 디오니소스와의 접신으로 극복되거나 폐기될 수 있는가, 로봇을 재생산할 뿐인 체계는 그저 디오니소스라는 해방구를 통해 지양되어야만 할 무엇인가. 우리는 이 공연의 표제와 형식을 통해 바로 이 “디오니소스 로봇”의 양가성을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로봇이냐 아니냐, 디오니소스냐 아니냐의 양자택일적 물음이 아니다. 물론 “디오니소스 로봇”의 명명이 일차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기계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 기계로부터 탈피할 것인가 하는 문제임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