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가구 참혹했던 현장 등져…피해자 장애·트라우마 등 고통 여전
사각지대 놓인 정신질환자 관리체계 보완 시급…법령 개정은 더뎌

[※ 편집자 주 = 기해년 끝자락입니다.

올해는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휩싸이게 하거나 분노로 몰아넣는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연합뉴스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쏠리게 했던 주요 사건·사고 5건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안전망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
[2019 사건 그후] ① "삶 자체가 무너져"…안인득 방화살인사건
"창원에 사는 자식들이 전화해서는 잘 때 문 단단히 닫으라며 걱정을 많이 해줘요.

"
안인득 방화살인사건이 있었던 아파트에 사는 한 할머니(75)는 "지금은 괜찮아진 편"이라면서도 "당시 소방차와 경찰차가 많이 왔었다.

현장을 목격하고 한동안은 휴대전화 벨 소리만 들어도 놀랄 정도였다"며 그날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3명의 주민은 모두 이름을 밝히기를 꺼렸다.

올해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 한 아파트 A동에서 22명의 사상자(5명 사망·17명 부상)를 낸 안인득(42)의 방화·살인은 주민들의 삶을 일순간에 뒤흔들었다.

이달 중순 찾은 해당 아파트는 겉보기엔 참혹했던 사건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 말끔했지만, 주민들의 몸과 가슴 속 깊은 상처는 그대로 남았다.

[2019 사건 그후] ① "삶 자체가 무너져"…안인득 방화살인사건
◇ 피해자 일부 아직도 성대 마비 등 극심한 고통 시달려
중경상자와 목격자 등 간접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 줄곧 불안과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등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들 중 70여명은 진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나 진주시보건소를 통해 상담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던 이들의 발길은 사건 발생 6개월째인 지난 10월부터 거의 끊겼다.

그렇지만 이들 대부분은 현재까지 극심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안인득이 휘두른 흉기에 찔린 피해자 중 일부는 영구적 성대 마비, 신경 장애, 원인 불명의 통증 등으로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 오랜 기간 일상을 보내며 가족들과 추억을 가꿔나가던 주민 가운데 상당수는 새 터전을 찾아 떠났다.

[2019 사건 그후] ① "삶 자체가 무너져"…안인득 방화살인사건
A동 전체 80가구 중 25%에 해당하는 20가구가 이사했다.

애지중지하던 10대 조카를 잃은 50대 주민과 아직 곱기만 한 50대 어머니를 잃은 30대 주민은 가족을 빼앗긴 공간에서 더는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초등학생 딸과 시어머니를 동시에 잃은 40대 주민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보호하려고 안인득을 막아선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70대 아내 역시 극심한 슬픔과 고통 속에서 이주를 택했다.

기존 주민들이 떠난 빈자리 일부는 새로 이사 온 주민들로 채워졌지만, 예전처럼 언제 다 채워질지는 기약할 수 없다.

최근 안인득에게 사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안의 범행으로 피해자들의 생명과 건강이 침해됐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고 지적했다.

[2019 사건 그후] ① "삶 자체가 무너져"…안인득 방화살인사건
◇ 사각지대 정신질환자 관리 강화…담당 센터 인력 확충 등 과제
보건복지부·지방자치단체·경찰은 사건 이후 정신질환자 치료·관리 체계 보완에 나섰다.

조현병을 앓고 있던 안이 돌연 치료를 중단한 뒤 피해망상을 키워오다가 이웃들을 향해 앙심을 품고 계획범행을 꾸민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정신질환자와 관련한 응급상황 발생 때 현장에서부터 올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현재 일부에서 운영하는 응급개입팀을 내년 중 17개 시·도 34개 팀으로 확대한다.

정신질환자가 자해 또는 타인을 해치는 행동을 하거나 그런 의심이 드는 상황이 생겼을 때 어느 기관으로 신고가 들어가도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경찰, 소방이 공동 대응한다.

관리받지 못한 중증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이 발생해도 경찰이 단순 계도하는 데 그친 안의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안인득은 방화·살인 직전인 지난 3월 이웃들을 막무가내로 뒤쫓는 등 수차례 폭력 성향을 보여 경찰이 잇따라 출동한 바 있다.

[2019 사건 그후] ① "삶 자체가 무너져"…안인득 방화살인사건
복지부가 자격을 부여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은 환자의 정신질환 여부, 입원 필요 여부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경찰관은 현장 상황과 전문 요원 의견을 종합해 필요하면 응급입원을 추진할 수 있다.

복지부는 또 일부 경찰관들이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경찰청·소방청 등이 함께 발간한 '정신과적 응급상황 대응 매뉴얼'을 보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등을 규정한 정신건강복지법도 정비됐다.

안의 방화살인 직후 공포된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은 타인에게 해를 끼쳐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환자가 퇴원 이후 치료 중단 때 증상이 악화할 우려가 있으면 퇴원 사실을 정신건강복지센터장에게 통보하도록 했다.

환자가 거부하더라도 정신건강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통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일부 법안 처리는 아직 더디다.

[2019 사건 그후] ① "삶 자체가 무너져"…안인득 방화살인사건
특히 안인득처럼 정신질환이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를 보호관찰소와 경찰관서, 복지센터의 공조를 통해 지속 관리하도록 하는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은 지난 7월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이 법률안은 정신질환 보호관찰 대상자의 인적사항과 병력·치료 이력, 보호관찰 종료 사실 등을 경찰관서장과 정신건강복지센터장에게 제공토록 해 보호관찰 이후에도 정신질환자의 원활한 사회 복귀를 돕고 재범 방지 효과를 거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와 별개로 경남도 등 지방자치단체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되지 않은 정신질환자를 찾아 관리 체계로 편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끝내 등록을 거부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방안, 정신건강복지센터 내실화를 위한 인력 확충 등은 계속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사회 안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등록·관리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인력 확충, 종사자 안전 대책 수립 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