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21개월 대치 끝에 ‘1단계 무역합의’에 도달한 것은 나라 밖에서 전해진 모처럼 만의 희소식이다. 미국이 중국에 부과했거나 부과하려던 총 520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축소·철회하고, 중국은 내년에 500억달러어치의 미국 농산물을 구매한다는 게 양측 합의의 핵심이다.

무역전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안도감에 한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증시까지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예고대로 미국이 15일부터 1600억달러 관세를 추가 부과했다면 세계 경제가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란 점에서 무척 다행스럽다.

하지만 한숨 돌린 것에 불과할 뿐 ‘지뢰밭’은 그대로다. △기술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보호 △보조금 등 비관세 장벽 △사이버 절도 등 미·중 간의 핵심 쟁점은 합의에서 쏙 빠졌다. “중국으로부터 실행가능하고 영구적인 약속을 받는 데 실패했다”는 미국 내 불만은 험난한 2·3단계 협상을 예고하고 있다.

홍콩·위구르인권법에 이어, 미 함정의 대만 기항 문제로 이달 초 ‘전쟁’까지 들먹이던 두 나라다. ‘무역수지 문제’가 아닌 세계관의 충돌인 데다,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기술 냉전’ ‘패권 전쟁’이라는 점에서 갈등 재점화는 언제든 가능하다.

미국의 압박이 제3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전선’을 세계 각국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후 유럽에 ‘디지털세 보복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고, 미국 농산물과 경쟁하는 브라질·아르헨티나는 ‘환율 조작국’이라며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위협했다.

‘만만한 한국’은 언제라도 트럼프의 공격 레이더에 잡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도 미국 견제가 약해진 틈에 반도체 도전을 가속화하고, 인공지능(AI) 등에서 격차 확대에 나설 것이다. 일시적으로 포성이 멈췄다고 해서 ‘낙관 무드’에 젖기보다, 그간의 정책 실패를 수정하는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