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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육군 조병창] 강제동원 피해 상징…조병창은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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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이남 최대 무기 공장…소총·총검·폭탄 등 병기 제조
    조선인 1만명 안팎 강제동원…해방 직후 미군 사령부로
    [일본육군 조병창] 강제동원 피해 상징…조병창은 어떤 곳
    1930년대 말 일본은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써 인천 부평을 하나의 거대한 군수기지로 키웠다.

    부평은 인천항과 경인선이 가까워 물자 이송이 편리하고 분지여서 연합군의 공습을 쉽게 피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1941년 5월에는 군수기지의 구심점이나 다름없는 일본육군인천조병창 제1제조소가 부평 산곡정에서 개창식을 열었다.

    한자 뜻 그대로 '무기를 만드는 공장'인 조병창(造兵廠)은 당시 부평과 평양에 각각 1·2제조소를 뒀다.

    인천조병창은 조선군관구 육군병기행정본부 소속이었다.

    조병창은 독립적으로 무기를 만들었고 자체 생산이 어려울 경우 민간 군수공장에 하청 생산을 맡겼다.

    일대에는 자연스레 군수 산업 인프라가 갖춰졌다.

    인천조병창 인근에도 히로나카상공, 미쓰비시(삼릉·三菱) 제강, 도쿄제강을 비롯한 군수 기업들이 잇따라 공장을 세웠다.

    지금의 미쓰비시 줄사택으로 알려진 근로자 숙소도 함께 지어졌다.

    [일본육군 조병창] 강제동원 피해 상징…조병창은 어떤 곳
    3개 공장을 갖춘 인천조병창은 일본이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의 무기 제조소로 평가될 만큼 생산량이 어마어마했다.

    부평역사박물관이 펴낸 개관 10주년 연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인천조병창의 월간 생산량은 소총 9천정, 총검 1만정, 소형 폭탄 2천800개, 중형 폭탄 2천개에 달했다.

    이상의 인천대 교수가 쓴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제의 인천조병창 운영과 조선인 학생동원'에서는 인천조병창의 생산 총액을 1942년 2천700만엔, 1943년 2천630만엔, 1944년 4천500만엔, 1945년 1천500만엔 등 4년간 총 1억1천330만엔으로 집계했다.

    문제는 조병창에서 일할 근로자 확보였다.

    일본은 이미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한반도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멋대로 동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 상태였다.

    1939년부터 1944년까지는 모집이나 관의 알선 형식으로 조선인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1944년 9월부터는 국민징용령을 실시해 강제동원에 나섰다.

    인천조병창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절대다수도 조선인이었으며 사실상의 강제동원이 주를 이뤘다.

    [일본육군 조병창] 강제동원 피해 상징…조병창은 어떤 곳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종일 배고픔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며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강제동원이 일상화된 일제 말기에는 국외 동원과 탄광 징용을 피하려던 청년들이 인천조병창으로 몰리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제가 작성한 인천조병창 명부에는 3천76명만이 기록돼 있지만 명단이 누락됐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 수만 1만명 안팎에 달할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한다.

    정혜경 서울시 문화재 위원의 '일제하 부평 인천육군조병창과 연계시설' 연구에 따르면 일제 말기에는 학생 동원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조병창에 동원된 학생들은 여의치 않은 공장 숙소 사정 탓에 학교에서 군수 물자를 만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해방 후 인천조병창은 부평에 주둔한 미군이 그대로 인수해 미군수지원사령부(ASCOM)를 설치했다.

    1973년 ASCOM은 폐쇄됐지만 아직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반환 작업이 끝나지 않아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인천조병창 역시 수십 년간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다.

    국방부는 다이옥신류 등에 오염된 캠프마켓 토양을 정화해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캠프마켓 44만5천여㎡를 인천시에 반환할 예정이다.

    시는 캠프마켓에 남아있을 인천조병창 시설물을 보존해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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