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윤석열  /연합뉴스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윤석열 /연합뉴스
서울동부지검은 4일 유재수 사건 관련 청와대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검찰을 공격하고 있지만 검찰 내부에선 법과 원칙대로 끝까지 수사하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이번 사건을 ‘제2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여기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야 향후 또다른 ‘적폐수사’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 임명후 내달쯤 인사 전망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조직 내부에선 조 전 장관 수사와 유재수 사건 수사를 지나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반대파들도 윤 총장에 힘을 싣고 있다. 파격 인사와 측근 중용 등으로 그동안 검찰 조직 내부에선 일부 반(反) 윤석열파가 있었지만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노골적인 검찰 수사 개입으로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상당수 검사들이 윤총장으로 돌아섰다. 한 검사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후 당초 내년 2월 인사를 한달 앞당겨 1월에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며 “조국, 유재수, 김기현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팀에 대해 현 정부가 ‘한직 발령’ 등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사의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이 갖고 있고, 대부분 청와대 개입으로 이뤄진다. 과거 박상기 법무부 장관 당시 인사를 통해 검찰의 ‘공안통’이나 ‘형사통’ 들이 대부분 한직 발령을 받거나 검사 옷을 벗었다.

"전두환때도 이런 식의 수사방해는 없었다"

최근들어 청와대와 여당의 공개적인 검찰 비판이 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찰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고 발언했고,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검찰에 대한 감찰을 촉구했다. 검찰이 개혁에 저항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검찰 내부에선 “청와대와 여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 의혹, 유재수 전 부시장 감찰무마 의혹 등 실세들의 혐의에 대해선 반성하지 않고, 검찰 수사만 비판하고 있다"며 "이런식의 수사 방해 행위는 전두환 정권때도 없었던 일”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법과 정의를 위해선 한직 발령도 두렵지 않다”는 분위기가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검사들은 검찰 개혁에 동의하지만 최근 일련의 개혁 중에는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조 전 장관 수사때 ‘특수부 폐지’, ‘피의사실공표 금지’, ‘법무부 감찰권 강화’ 등이 추진 된 것은 수사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어서 검찰 내부의 불만도 크다. 지역에서 근무하는 다른 검사는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수사 과정에선 특수부를 오히려 늘리고 강화했는데 조국, 유재수 사건 등이 터지자 특수부를 없애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최근 선거를 담당하는 공안부 등 검찰의 41개 직접 수사 부서를 폐지하겠다는 방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제2국정원 댓글 사건'에 달라진 생존방식

검찰 내부적으로는 이번 사건을 ‘제2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여기며 “법과 원칙을 어기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쉽게 타협했다가 향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법리에 따른 ‘적폐수사’ 대상으로 떠올라 수사나 재판을 받는 사례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록 한직으로 발령나더라도 이는 나중에 '훈장'이 될 수 있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통해 검증된 것도 검사들이 압박을 느낄수록 더 강해지는 배경이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국정원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한 사건인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수사팀장은 윤석열 현 검찰총장이 맡았고, 부팀장은 박형철 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맡았다. 당시 청와대는 정권 치부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윤 총장을 3년간 대구고검, 대전고검 등 한직으로 발령냈고, 박 비서관은 감봉 1개월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선배 기수를 4~5기수 건너뛰면서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파격 승진을 거듭했다. 박 비서관 역시 청와대 요직으로 왔다. 반면 당시 정부의 지시에 따랐던 검사들은 대부분 수사나 재판 대상이 됐다.

검찰 한 관계자는 “청와대, 여당 등의 요구대로 검찰개혁은 당연히 해야하겠지만 현 정권 실세들의 비위 의혹에 대해선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특히 김기현 하명수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통령 탄핵사유에 해당할 수도 있는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엄중하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