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수정안 발의' 카드 만지작…"지금이라도 협상해야" 협상론도 부상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 카드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대치국면에서 선제공격에 들어갔지만, 의결정족수 미달로 국회 본회의가 열리지 않으면서 궁색한 처지가 됐다.

민주당의 허를 찌르려던 필리버스터는 해보지도 못한 채 오히려 '민생법안을 볼모로 잡았다'는 비난 여론의 역풍을 맞는 모양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 쟁점법안에 대해서만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민생법안의 경우 민주당이 본회의만 열어주면 즉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2일 청와대 인근 '투쟁텐트' 앞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당과 문희상 국회의장은 합법적인 투쟁인 필리버스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라며 "민식이법 통과를 위한 원포인트 국회 본회의를 열고, 소수 야당의 필리버스터 권한을 인정해달라"고 말했다.

주호영 의원도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여당이 본회의를 안 열고 싶은 것"이라며 "오늘도 한국당은 민식이법 뿐 아니라 민생법안을 모두 통과시켜주겠다는데도 여당이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패스트트랙·민생·예산안 '삼각파고'…원내전략 부심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든 데는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볼 수 있다.

지난달 29일 본회의는 무산됐지만 여당이 예산안 처리를 위해 이달 중 본회의를 열게 되면 필리버스터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한국당의 입장이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를 놓고 막판 패스트트랙 정국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민주당 일각에서 '쪼개기 임시국회'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한국당으로선 필리버스터 전략만으로는 패스트트랙 열차를 멈춰 세우기에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정기국회 폐회 후 열리는 임시국회는 통상 30일 동안 진행돼 왔지만 민주당과 문 의장이 법안을 단타 식으로 처리하면서 하루짜리 임시국회를 잇따라 열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은 회기 종료 후 다음 임시국회에서 곧바로 표결에 부칠 수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살라미(쪼개기) 전술을 쓴다면 문 의장과 둘 다 망가지는 길이고 20대 국회는 막장으로 치닫게 된다"고 경고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수 싸움은 또 다른 수를 부르게 되는데, 더 저급하고 비열한 수를 쓰면 당장의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지만 이를 보는 국민들이 내년 총선에서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패스트트랙·민생·예산안 '삼각파고'…원내전략 부심
한국당은 나아가 민주당이 자당을 제외한 여야 4당에 대안신당까지 더한 '4+1' 협상으로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발의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정기국회 폐회 직전에 정부 예산안의 '4+1' 수정안이 상정·표결된다면,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시도한다 해도 정기국회 종료와 함께 곧바로 필리버스터도 무산될 공산이 크다.

정 정책위의장은 이날 최고위회의에서 "예산마저 소위 '4+1' 수정안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들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며 "제1야당을 완전히 빼고 좌파 정당끼리 나라 살림을 나눠 먹기 하면서 수정안을 밀어붙여 통과시킨다면 이것이 독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패스트트랙을 저지할 뾰족한 방안이 나오지 않자, 한국당 일각에서는 '무한 수정안 발의'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미루자는 주장도 나왔다.

수정안부터 처리해야 원안을 표결할 수 있는 국회법을 이용한 '준법투쟁'이라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강경 대오를 풀고 여야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용태 의원은 YTN 라디오에서 "선거법을 필리버스터로 막고 추진하는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며 "최후까지 선거법을 놓고 원내지도부가 협상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김성태 의원도 페이스북 글에서 "협상과 타협이 실종된 정치는 국회의 존재를 위태롭게 할 뿐이며, '전부 아니면 전무'는 손자병법에도 없는 지략이다.

어느 쪽이든 죽음만 기다릴 뿐"이라며 "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협상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