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본항공 파산 통해 본 기업가의 역할
일본항공(JAL)은 2010년 1월 파산했다. 빚이 자산보다 많은 재무적 부실 때문이었다. 잘나가던 JAL은 왜 몰락했을까? 1951년 설립된 이 회사는 전후 일본 경제의 급성장과 엔화 가치의 지속적 상승을 배경으로, 국제 노선의 저렴한 운임에다 일본인의 해외여행 붐까지 더해지며 승승장구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발표한 1983년 국제선 운송 실적은 세계 1위였다. 매출 기준으로도 세계 3대 메이저였다.

그러나 JAL의 번영은 거기까지였다. 미국의 규제완화법(1978년)으로 민영화가 세계적 조류를 형성하자 1987년 JAL도 뒤늦게 민영화를 단행했다. 그런데 지배구조가 문제였다. 단 1% 이상의 대주주도 허용하지 않았다. 완전한 ‘국민의 기업’으로 만든 것이다. 민간기업의 소유와 경영 분리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새로운 지배구조였다. 관료들에게는 매력 있는 먹잇감이었다. 주인 없는 기업에 연이은 ‘낙하산 인사’로 운수성 출신 관료들이 경영을 맡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영 혁신보다 노조와의 우호적 관계 형성을 우선시했다. 이는 방만 경영으로 이어졌다. 교육 사업과 정보기술(IT) 사업, 레스토랑 사업까지 확대한 도덕적 해이는 결국 2000년대 들어 수차례에 걸친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JAL을 빚더미에 올려놓고 말았다.

일본 정부는 파산한 JAL의 회생을 놓고 부심했다. 삼고초려로 영입한 해결사는 당시 78세였던 교세라그룹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었다.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자동차의 혼다 소이치로와 함께 일본 ‘경영의 3신(神)’으로 꼽힌 이나모리 회장은 JAL의 회생을 위해 연봉도 포기했다. 1155일간의 회생 과정은 고통스러운 투쟁이었다. 13조원이 넘는 국고가 투입되는 동안 8개나 되던 사내 노조는 정리됐고, 직원 4만8000명 중 1만6000명이 회사를 떠났다.

현장 단위조직원들의 주인의식과 회계경영을 주입한 ‘아메바 경영’으로 조직 문화는 바뀌었고 경영은 빠르게 회복됐다. 주식도 다시 상장됐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을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을 닮아 있다.” 새 기업으로 탈바꿈한 JAL을 떠나면서 이나모리 회장이 남긴 말이다. 존망을 다투는 치열한 경쟁에서 배려와 따뜻함을 강조하는 온정주의는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는 혁신을 가로막고, 결국은 기업을 병들게 한다는 교훈이다.

지난달 13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국민연금의 경영참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논란이다. 투자 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 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 권익을 침해하는 ‘나쁜 기업’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취지다. 임원이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면 해임을 제안하고 정관 변경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임기 중 임원의 해임 요구를 금지한 상법 및 무죄 추정의 원칙과 충돌되는 것도 문제지만, 경영권 개입과 전문경영인에 대한 환상으로 재벌기업을 개혁하겠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지난 3월 가족의 ‘갑질’로 사법처리가 진행될 당시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은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결정적이었다. 독선적 리더십과 소통 부재 등으로 사회적 비난은 거셌다. 그러나 그는 1997년 괌 사고 이후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는 안전한 항공사로 만들었고, 1990년대 말부터 JAL을 앞서가면서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끌어올렸다. 그는 비정해 보이는 리더였지만 대선을 실현한 기업가였던 셈이다.

기업 경영은 그런 기업가들이 할 일이다. 국민연금이 할 일은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는 것보다 가치가 저평가된 기업을 가려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나쁜 기업’이라고 판단되면 투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게 국민 노후자금 관리를 책임진 ‘집사’의 본업이다. 그런데도 경영에 참여하겠다면 국민 동의부터 구해야 한다. 그 돈은 지배구조를 개선하라고 맡긴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