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반대신문 기회 박탈…억울한 처벌 발생할 수도"
대법 "부당하게 법정증언 거부했더라도 검찰조서 증거로 못 써"(종합)
증인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유로 재판에서 증언을 거부한 경우에도 해당 증인의 검찰 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염 모(48)씨의 상고심에서 이 같은 판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염씨는 2017년 3월 최 모씨에게 640만원을 받기로 하고 필로폰을 건네준 혐의로 기소됐다.

이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인인 최씨는 염씨의 1·2심에서 모두 증언을 거부했다.

최씨의 증언 거부는 1심 때는 법적으로 정당했지만 2심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염씨의 1심이 끝난 뒤 최씨 자신의 마약 혐의 사건 판결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은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우려가 있으면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염씨의 1심 때는 최씨의 증언 거부가 정당했지만 2심 때는 증언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검찰은 염씨의 재판에서 최씨가 증언을 거부하는 상황을 두고 최씨의 검찰 조서를 증거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사소송법은 진술해야 하는 사람이 사망·질병·외국 거주·소재 불명이나 이에 준하는 사유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라면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검찰 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1심은 최씨의 증언 거부가 정당했으므로 검찰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 조서 역시 증거로 사용되지 않았고, 염씨의 혐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2심의 경우 증언 거부에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에 검찰의 주장이 쟁점이 됐다.

최씨가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는 상황을 '사망 등에 준하는 사유'로 인정한 채 검찰 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법리를 검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심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는 경우 별도 제재 규정이 있으며 예외규정은 가능한 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2심은 "진술 불능의 이유는 사망·질병 등 물리적으로 증언이 불가능한 경우에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도 이와 같은 판단이 옳다고 보고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증언 거부가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예외가 적용된다면, 피고인에게 반대신문 기회를 박탈하고 전문법칙(경험한 사람의 진술이 직접 법정에 제출돼야 한다는 원칙) 예외의 범위를 넓혀 피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용인하는 것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예외를 적용한다면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해 놓고 나중에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하는 경우 죄 없는 피고인이 억울하게 처벌받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증언거부권이 없음에도 증언을 회피하는 경우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이 허위일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며 "따라서 정당한 이유 없이 증언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반대신문을 통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의 진위를 음미할 필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또 "정당하지 않은 증언 거부에는 실효적인 제재수단을 도입하는 등 증언을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지, 예외규정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해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증인의 증언 거부 상황을 초래하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를 적용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박상옥 대법관은 정당하지 않은 증언 거부에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박 대법관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이념도 고려해야 한다"며 "다수의견대로라면 피고인이 증인을 상대로 증언을 거부해달라고 회유·협박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국민에 부여된 증언 의무가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박 대법관은 이 사건에 대해서는 1심에서 정당한 증언거부권이 행사된 시점에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며 무죄라는 원심 판결에는 동의했다.

/연합뉴스